월드컵 이모저모





1930 제1회 우르과이 월드컵부터
그리고 2010년 제19회 남아공 월드컵에 이르기까지
80년의 월드컵 역사 속으로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개최된 '2010 남아공 월드컵'





축구공 전쟁


1930년 제1회 우르과이 월드컵의 결승전에서 맞붙은 우르과이 아르헨티나는 어떤 축구공을 사용할 것이냐를 놓고 경기 못지않은 '장외열전'을 치루었다. 지금은 FIFA(국제축구연맹)가 공인구를 사용해 시비거리가 없지만 1회 대회인 당시에는 아무런 원칙이 없었다. 우르과이는 개최국임을 내세워 자기 나라에서 만든 공을 사용하려 했고 아르헨티나는 공이 경기에 큰 영향을 끼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이 날 샌타나리오 구장에는 7만 3천여명의 관중이 몰려들었고 이들로부터 압수한 권총만 해도 2백정이 넘을 정도로 분위기는 과열되어 있었다.
결국 동전으로 선후를 가려 전반에는 아른헨티나 공을, 후반에는 우르과이 공을 사용하게 되었다.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한 명승부 끝에 개최국 우르과이는 아르헨티나를 4 - 2로 승리하였고,
제1회 월드컵 우승이라는 영광을 얻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 자블라니(JABULANI)





살인을 부른 자살골


제15회 미국 월드컵 A조에 속한 콜롬비아는 대회 개막전까지만 해도 우승후보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첫 경기에서 루마니아에 1 - 3로 대패한데 이어 당연히 이길 것으로 예상했던 미국에 마저 '에스코바르'가 자살골을 넣는 바람에 1 - 2로 패배하게 되었다. 에스코바르는 전반 33분 미국의 하크스가 슛한 볼을 걷어내려다가 자기 골문안으로 차 넣고 만 것이다. 콜롬비아는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강호 스위스를 2 - 0으로 꺾었지만 1승 2패로 조4위에 그쳐 탈락하게 되었다.
쓸쓸히 귀국한 콜롬비아팀은 팬들의 울분에 찬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특히 에스코바르는 도박조직으로부터 살해위협에 시달리다가 결국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콜롬비아 경찰은 85만달러의 현상금까지 걸고 범인 색출에 나섰고 움베르토므뇨스 카스트로 등 2명을 체포했다. 카스트로는 콜롬비아의 승리에 거액을 걸었다가 날린 목장주인 갈론 에나오의 운전사라고 자백했다.



월드컵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낳은 콜롬비아 '에스코바르' 선수의 자책골






월드컵 우승 트로피


초기의 월드컵 우승 트로피는 프랑스의 '아벨 라폴레'라는 조각가가 제작한 것으로 순금 4kg으로 만든 이컵은 38cm의 높이로 호두나무 받침대 위에 날개 달린 여신이 두손으로 8각형의 컵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며, 1946년부터 FIFA(국제축구연맹) 초대회장인 줄리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줄리메컵으로 명명되지만 두차례 도난당한 끝에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1966년 7월 3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전시중에 없어진 줄리메컵은 1주일 후 애견과 함께 산책하던 템즈강의 바지선인부 데이비드 코베트에 의해 발견된다.
1970년 통산 3회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이 줄리메컵을 영구적으로 소유하게 되었으나
1983년 12월 19일 복면을 한 강도에게 다시한번 도난당한다.
경찰은 리우데자네이루 북부 빈민가에서 컵을 녹여 금으로 팔아먹은 사실을 확인하고 용의자 3명을 붙잡았지만 용의자들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영원히 사라진 줄리메컵





요즘 사용되고 있는 우승 트로피는 1974년 서독 월드컵때 부터 사용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실비아 가자니'라는 조각가의 작품으로 직경 15cm의 받침대 위에 두여인이 지구를 떠받치고있는 모습을 하고있으며, 25만 스위스프랑의 보험에 가입되어있다.

우승트로피는 FIFA가 영구히 보관하고 우승팀에게는 실물보다 조금 작은 모형을 준다.
컵 하단에 우승국을 새겨 넣는데 17개국을 넘을 수 없어 2038년 대회가 끝나면 퇴역해야 할 운명이다.



FIFA 월드컵





마라도나의 신의 손 논쟁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8강전에서 0:0 이던 후반 6분 일글랜드 오른쪽 진영에서 아르헨티나의 크로스가 올라왔고 축구신동이라 불리던 마라도나는 잉글랜드 골키퍼 쉴턴과 함께 공을 향해 높이 뛰어 올랐다. 공이 잉글랜드의 골문 안으로 들어가자 쉴턴이 뒤늦게 마라도나가 손을 사용했다며 주심에게 항의했지만 받아들려지지 않았다. 마라도나는 기자들의 집요한 추궁에 '약간은 신의 손에 의해, 또 약간은 머리에 의해 골이 들어갔다'라고 대답했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 덕분에 고비를 넘긴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서독을 3 - 2로 꺽고 통산 2번째 우승에 성공했고 마라도나는 대회의 MVP를 거머쥔다.
한편 영국의 공인 도박회사인 윌리엄 힐사는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경기를 1 - 1 무승부로 예상한 고객들에게 1만 5천달러를 되돌려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은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B조예선 아르헨티나와 구소련의 경기에서 재연된다. 전반 아르헨티나 왼쪽 골포스트 앞에서 수비를 하던 마라도나가 알렉산드로 자바로프의 강슛을 엉겁결에 오른손으로 막아 낸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의 프레데릭손 주심은 이를 미처 보지 못했고 결국 경기는 아르헨티나의 2 - 0 승리로 끝이났다. 다시 한번 신의 손 덕택을 본 아르헨티나는 예선탈락의 위기를 넘기고 결승까지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징크스


개최국의 첫 경기 무패
80년 월드컵 역사에서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은 확실한 징크스는 바로 개최국의 첫 경기 무패의 징크스이다. 2006년까지 18번의 월드컵동안의 기록을 보면 개최국의 첫 경기의 전적은 14승 5무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으며, 이번 남아공 월드컵 역시 마찬가지 였다.


전 대회 개최국의 부진

1986년 월드컵을 개최했던 멕시코는 1990년 월드컵에서 본선조차 오르지 못하는 아픔을 겪어야했고,
1994년 월드컵 개최국인 미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예선 3패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또한 1998년 월드컵 개최국이자 우승국이었던 프랑스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무득점으로 예선에 탈락했다.


펠레의 저주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대회 3연패를 노리던 브라질 주축 선수였던 펠레는 우승을 호언장담하며 월드컵 본선에 나섰으나 브라질은 1승 2패로 예선에서 탈락하였다.
은퇴 후 월드컵 때마다 쏟아낸 펠레의 말은 신기하게도 실제와 정반대의 결과를 있따라 가져오며 월드컵에서 새로운 흥미거리로여겨지기 시작했다.
특히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그가 우승후보로 지목한 스페인과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승후보로 지목한 프랑스는 모두 부진한 성적으로 예선에서 탈락해 정점에 달했다.



'축구 황제'로도 '펠레의 저주'로도 유명한 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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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onobo007.tistory.com BlogIcon amuse 2010.07.28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 50번째 포스트!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