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읽고

 

 

 

계절이 변해가듯이, 또 시간이 흘러가듯이 우리는 당연하게도 성장합니다. 받아들인다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결정권은 없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우리는 아이들보다 훨씬 큰 몸과, 힘, 그리고 머릿속에는 지식을 얻게 되지만 불행하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순수함이란 훌륭한 보물을 잃게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가끔 무언가 보았을 때, 무언가 들었을 때, 혹은 어떤 향기를 맡았을 때 우리의 순수했던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또 그리워하곤 합니다. 이번에 제가 읽은 소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역시 그런 것들 중 하나였습니다.

 

좀머 씨 이야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 속에 등장하는 좀머 씨 만큼이나 작가인 파트리크 쥐스킨트 역시 별난 사람이다 라는 말을 피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사진 구하기 조차 쉽지 않은 그는 사람 만나기를 싫어해 인터뷰도 그리고 상받는 것 조차 거부하고 은둔생활을 합니다. 매스컴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쥐스킨트는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마음에 문을 닫아버린 사람으로 보여지기 십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로지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진정성 있는 작가의 면모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 씨 이야기의 줄거리

책의 제목과는 달리 소설의 주인공은 좀머 씨가 아닌 한 어린 소년입니다.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만 같던 그리고 나무타기를 잘하던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을 담담하고 일상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순순한 소년의 성장과정에 '좀머'라는 이웃 아저씨가 마치 총알 처럼 각인되어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는 좀머 씨는 지팡이를 들고 배낭을 메고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그저 걸어다니기만 할 뿐입니다. 어린 소년이 더이상 나무를 탈 수 없게 되었을 때, 수수께기 같은 좀머 씨는 사라져 버립니다.

 

한편의 동화같은 소설

미스테리한 좀머 씨에 관한 이야기를 제쳐 놓더라도, 순수한 소년의 성장기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순수함을 잃어버린 성인들이 본다면야 별것도 아닌 일로 고민하고 설레어하는 소년의 때묻지 않은 모습은 잃어 버렸던 순수함을 떠올리기에 충분합니다. 특히 평소 좋아하던 소녀(카롤리나)와 하교길을 함께 할 기회가 생긴 소년이 소녀와 걸으며 나눌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준비하고, 소녀에게 보여줄 풍경이 많은 길을 찾는 모습들은,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 쯤 느껴보았을 법한 기분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좀머 씨

소설 속 어디 에서도 좀머 씨에 대해 정확하게 규명하거나 설명하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좀머 씨가 왜 하루 온종일을 그저 걸어다니는 것 인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가령 책에서 나오는 밀폐 공포증이라 던가 하는 것들은 좀머 씨에 대한 사람들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좀머 씨의 기이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마을에서는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오로지 주인공 소년 만이 이 이상한 이웃 아저씨에 대해서 궁금해 합니다. 소설 속에서 소년이 좀머 씨에 대한 호감을 표현한 부분은 없지만, 좀머 아저씨에 대한 소년의 호기심 이상의, 이를테면 '끌림'을 소설 전반을 통하여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좀머 아저씨가 아무 병에도 걸리지 않았고.... 단지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내가 나무를 기어오를 때 즐거움을 느끼듯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소설 전반적으로 은은하게 감도는 좀머 아저씨에 대한 소년의 끌림은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 대한 공감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사회의 관념과 굴레에 때묻지 않고자 하는 좀머 씨와 때묻지 않은 소년의 순수함 같은 것이죠.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좀머 씨에게 '정확'이라는 단어를 부여 할 수 있는 부분은 그가 외친 한마디 였습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점점 호수 깊은 곳을 향해 전진하는 좀머 씨를 보고도 소년이 그를 구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것, 그리고 그의 행방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은 마치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라고 말했던 좀머 아저씨에 대한 으리를 지킨 것 같아 보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소년이 좀머 씨에게 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지지와 응원이었지 않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