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 초보적이고 편협한 독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나 유명하다고 하는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고 있는 편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과도 마침내 그리고 당연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지 제목 하나 만은 익숙한 '데미안'을 선택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성 만으로 '데미안'을 평가 받고 싶었던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시절부터 그는 시인이 되기를 원하였고, 1899년에 발표한 처녀시집 '낭만적인 노래'가 릴케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문단에서도 그를 주목하게 됩니다. 그에게 유명세와 확고한 문학적 지위를 안겨준 작품은 1904년에 발표한 최초의 장편 소설인 '페터카멘친트'였습니다.
데미안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에 쓰여졌고,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19년에 발표되었습니다. 한가지 일화가 있다면 당시에 이미 작가로서 유명하던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작품성 만으로 평가 받고 싶어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다름아닌 소설의 주인공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그 결과 에밀 싱클레어라는 유령의 작가가 독일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폰타네상의 수상자로 지명되었습니다. 비평가의 문체 분석에 의해 데미안의 작가가 헤르만 헤세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지음(민음사)
데미안의 줄거리
소설의 가장 첫 번째 소제목은 '두 세계'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 싱클레어는 유년시절 두 세계에대하여 느끼게 됩니다. 한 세계는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랑과 엄격함, 모범과 학교 같은 것들이었고 이러한 것들은 싱클레어 역시 잘 알고 있는 것들로 싱클레어에게 안정감, 온화한 광채 혹은 밝음으로 대두되는 세계였습니다. 반면 하녀와 직공들, 도살장과 감옥, 술취한 사람들, 강도의 침입 등이 존재하는 다른 한 세계는 거칠고, 잔인하며 음침한 어두움으로 대두되는 세계였습니다. 그리고 두 세계의 경계는 서로 닿아 있었습니다. 사춘기시절의 누구나 그러하듯이 싱클레어 역시 온화하고 모범적인 밝은 세계 보다는 음침하고 거친 어두운 세계에 더욱 끌리게됩니다. 싱클레어는 불량한 친구 프란츠 크로머와 어울리기위해 실제로 하지도 않은 무용담과 비슷한 허풍을 늘어 놓게되고, 이는 되려 크로머에게 약점을 잡히는 꼴이 되어, 돌파구 없는 시달림을 겪게됩니다. 이런 그를 구원해 준 사람은 싱클레어보다 나이도 많고 학년도 높았던 전학생 '데미안'이었습니다. 데미안은 독심술과 혜안으로 프란츠 크로머를 쫓아주었고 싱클레어는 다시 밝은 세계로 돌아간 안도감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편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대한 남다른 해석을 들려 줌으로서 싱클레어로 하여금 기존의 규범과 관념들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열어주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이야기에 끌리지만, 겨우 되찾을 수 있었던 밝고 안정적인 세계와는 상반되는 즉, 데미안의 해석을 위험하게 느끼고 혹은 또다른 어두운 세계와의 연결고리 처럼 느끼고 데미안을 기피하게됩니다.
낯선 도시에서 홀로 지내던 학창시절 예전에는 프란츠 크로머였던 것이 이제 자신 속에서 싱클레어를 괴롭히고 있었고, 싱클레어는 다시금 방황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찾기위한 싱클레어의 투쟁 혹은 세상과의 투쟁은 때로는 오만하고 방탕한 생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정신적 지주 혹은 자신을 인도해 줄 그 무엇인가에 대한 갈망이 고조에 달했을 무렵, 우연히 책 사이에서 쪽지하나를 발견하게되고 다시금 데미안을 떠올리게 됩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줄거리를 요약하자니 매우 장황해 보이지만 소설을 결국 주인공 싱클레어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헤르만 헤세는 서두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귀함과 소중함에 대하여 피력합니다. 단순히 생명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그 하나 하나가 자연의 소중한 시도의 결과물이며, 일회적이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존재인 싱클레어나 혹은 우리들에게 단지 기존의 삶의 방식이나 규범들의 답습이아닌, 알을 깨기위한 투쟁 그리고 진정한 자신에게 이르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면서도 필연적인 것입니다.
나를 찾아 가는 길의 시작은 기존의 관념이나 규범과의 결별을 필요로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학교나 모범적인 것 등으로 대두되는 밝은 세계는 분명 안락함과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필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밝은 세계 만으로는 기존의 관념이나 규범의 답습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들려주었던 '카인과 아벨'이야기에 대한 기존의 관념과는 다른 해석은 싱클레어로 하여금 기존의 관념이나 규범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견해 혹은 주관을 가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보편적인 관념이나 규범에서 벗어난 길을 걷는 것(나를 찾아 가는 길)은 때로는 미친사람으로 손가락질 당하게 만들기도, 혹은 싱클레어가 그랬듯 방탕하고 오만한 생활로 이어지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마치 새가 알을 깨고 나와는 과정이 항상 순탄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 처럼. 그러나 새에게는 그것이 목숨과도 직결되는 문제 일 것입니다.
싱클레어의 성장, 데미안과 에바부인
헤르만 헤세는 주인공 싱클레어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혹독하고 치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싱클레어를 혼자두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인도자 혹은 조력의 손길을 내밉니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데미안이지만, 동경의 여인 베아트리체나,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 그리고 데미안의 어머니이자 이상향의 여인인 에바부인과의 만남들은 싱클레어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됩니다.
싱클레어는 어느덧 과거에 데미안이 자신에게 주었던 도움이나 조력, 예를 들자면 그 악랄했던 프란츠 크로머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과 같은 일을 다른사람에게 해주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싱클레어는 어느새 데미안과 닮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모습에서 데미안을 느끼며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소설 데미안을 읽은 느낌은 이렇습니다. 소설 초반의 두 세계에관한 이야기와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에게 시달리는 부분은 매우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거기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싱클레어를 구제해준 막스 데미안의 등장은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소설의 중반에 이르러서 싱클레어가 예전에는 프란츠 크로머였던 것 이 이제는 자기 속의 그 무엇인가와 사투를 벌이게 되었을 때, 지나친 상징성과 심오하고 철학적인 내용들이 난무하는 부분에있어서는(예를 들자면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와의 대화들) 저 역시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인 어려움과 혼란스러움을 소설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노력을 해 보았습니다. 상직적이고 다소 철학적이기도 한 소설 데미안 속의 한 문장 한 문장들을 학문적이거나 정확한 이해를 동반하려하기 보다는, 그저 헤르만 헤세의 낭만적이고 유려한 문장들 속에 녹아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참된 자기 자신에게 이르기위한 주인공 싱클레어의 투쟁이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끈은 놓치지 않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끈이 난해하고 상징성이 난무하는 소설 임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 킬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한 새의 투쟁은 힙겹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새는 자유롭게 날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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