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 데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고
2014라는 숫자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년도를 표시하는 일이 아니라면 2014(이천십사)라는 숫자를 사용해야 할 일이 평생에 몇 번 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2014라는 숫자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표현을 해보았습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연말은 참 이중적인 것 같습니다. 거리는 화려하고 호화롭지만 마음 한켠의 쓸쓸함은 감출수가 없습니다. 또한 연말엔 항상 이런저런 모임들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곤 하지만, 오히려 그 어느 때 보다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때 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저는 J.M. 데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연말과 특히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꼬마 주인공 제제의 이야기는 저의 마음 한켠에 있는 쓸쓸함에 온기를 불어다 주었습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J.M 데 바스콘셀로스 지음(동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줄거리
브라질에 사는 5살 꼬마 제제의 이야기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와 공장에 다니는 어머니, 세명의 누나들(잔다라, 랄라, 글로리아)과 제제에게 이런저런것들을 많이 알려주는 또또까형(안토니우) 그리고 제제의 어린왕, 동생 루이스가 제제의 식구들입니다. 제제의 집은 가난합니다. 그래서 제제는 크리스마스에 선물도 받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제제는 밝고 명랑함을 잃지 않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글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영특하기도한 제제 속에는 고약한 악마가 살고있기도해서, 가끔 그 악마가 제제를 유혹해서 고약한 장난를 쳐델때면 제제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누나들에게 매질을 당하기 일수 였습니다.
소설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져 있는데 큰 의미는 없습니다. 1부에서 제제의 가족들은 이사를하게 됩니다. 새로 이사간 집에서 근사한 망고나무와 타마린드나무는 누나와 형이 먼저 차지해버리고(이를테면 '이건 내꺼, 찜!') 남은것은 조그만 라임 오렌지나무 뿐이었습니다. 조그마한 나무를 가지게되어서 풀이죽은 제제에게 라임 오렌지나무가 말을 걸어옵니다. 제제는 라임 오렌지나무에게 '밍기뉴'라는 애칭을 붙여주고(기분이 좋을 때는 '슈르르까') 둘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됩니다.
2부에서 제제는 포르투갈 사람 마누엘 발라다리스의 차에 매달리는 장난을 쳤다가 그에게 혼줄이 나는 수모를 당합니다. 망신을 당한 어린 제제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그 후 다시만난 포르투갈 아저씨는 발을 다친 제제를 치료해 주고 먹을 것도 사주는 등 제제와 화해하게 되고 둘은 어른과 아이를 넘어선 우정을 쌓게 됩니다. 제제는 포르투갈 아저씨 발라다리스를 '뽀르뚜가'라고 부르며 친아버지 처럼 따르게 되고 발라다리스 아저씨 역시 제제에게 따듯함과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게해줍니다. 그렇게 행복하던 제제에게 어느날 비극이 찾아오게 됩니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
가난한 제제의 집에는 근사한 장난감이나 놀이감은 없지만 제제에게는 즐거운 일들이 가득합니다. 제제는 마음속의 작은 새와 대화하고, 머릿속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동물원 구경을 하기도, 카우보이가 되어서 들판을 누비기도 합니다. 제제의 가장 친한 친구 밍기뉴도 빼놓을 수 없죠. 한편 제제가 동생 루이스를 의젓하게 돌봐주는 모습이나,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지못한 제제가 아버지에게 속상한 말을 해버리게되고, 그것이 죄송해서 거리로 나가 구두를 닦아 번 돈으로 아버지에게 담배 두갑을 사드리는 모습 등에서는 제제의 조숙하고 대견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밝고 명랑함을 잃지 않는 제제의 모습은 무척이나 보기좋고 웃음짓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난한 환경으로 인해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제제의 모습에서는 대견스럽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주인공 제제의 하루하루를 가만히 보는 것 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대체로 소소하고 잔잔한 소설 속에서 가장 큰 사건은 역시 뽀르뚜가 아저씨의 죽음입니다. 소설 후반부에 뽀르뚜가 아저씨는 '망가라치바'라는 기차에 치여 제제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제제가 그렇게나 잘 따르고 좋아하던 뽀르뚜가 아저씨 였기 때문에 굉장히 슬픈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비극적으로 소설은 마무리 되지만 이 책이 슬프고 우울한 내용이 아니라 희망적이고 밝은 느낌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아마도 제일 마지막부분의 마흔여덟 살이 된 제제가 뽀르뚜가 아저씨에게 남기는 편지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흔여덟의 제제가 보내는 편지는 그리 길진 않지만, 제제가 그 큰 슬픔을 딪고 일어나 성장하였음을 보여주는, 한편으로는 뽀르뚜가 아저씨에게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해서 소설의 훌륭한 마무리이자 인상 깊은 부분이었습니다.
추가적으로, 흰 꽃을 피우며 작별을 고했던 라임 오렌지나무 밍기뉴와의 이별 역시 슬픈 헤어짐이라기 보다는 아름다운 이별에 더욱 가까운 것 같습니다.
2014년의 연말에 이 포스팅 작성을 시작하였는데, 저장해 놓고 이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니 어느 덧 2015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소설 속에서 처럼, 뽀르뚜가 아저씨가 망가라치바 기차에 치이는 끔찍한 사건 따위는 분명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제제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의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때론 지독하게 슬프기도 하겟죠.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우리내 인생에는 더할나위 없이 귀중한 자양분이 되어 우리를 성장 시킬 것 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갈 것입니다. 소설 속 제제가 그랬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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