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고

 

 

 

오랜만에 서평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만, 무수히 쏟아져나오는 책들 속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나? 하고 방황하게될 때가 많습니다. 그럴때면, 저는 고전 그리고 세계문학을 고르곤 합니다. 대중적 인기와 작품성을 인정받은 세계문학을 읽는 것은 흡사 손 안대고 코를 푸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전도연이나 최민식의 연기를 믿고 보는 관객들 처럼, 세계문학은 의심할 필요가 없고 그리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이번에 제가 읽은 작품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입니다.

 

파블로 네루다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1940년 칠레의 안토파가스타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년시절 집안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부에노스아에레스로 이주했고, 삼년동안 빈민가에 살면서 스카르메타는 방과후에 여러가지 일을 해서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경험으로 스카르메타는 영화, 축구, 만화, 음악 등 대중문화에 눈을 뜨게 됩니다. 1960년부터 칠레 대학교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였고, 이후 1967년 칠레 대학 문학 교수가 된 뒤 첫 단편집 '열정'을 출간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습니다. 1973년 피노체트가 쿠테타를 일으켜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베를린으로 망명한 스카르메타, 이때부터 영화 시나리오와 소설을 넘나드는 왕성한 활동을 합니다.

 

1985년에 발표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스카르메타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유명한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이기도 한 이 소설의 원제는 '불타는 인내' 였습니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소설의 서문에서 스카르메타는 이슬라 네그라에서 낮에는 네루다를 취재하고 밤에는 소설을 쓰는 가공의 삼류 신문사 기자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경험인 것 처럼 기술해서 소설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또한 네루다에게 아직 쓰지도 않은 소설의 서문을 부탁한 에피소드와 14년만에 소설을 완성했다는 허구의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그렇지만 스카르메타는 시인 네루다와 이슬라 네그라(네루다가 정착한 칠레 해안 마을)를 무척이나 흡모한 작가였음은 분명합니다. 1985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발표하기 전 까지 스카르메타는 동일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올리고, 라디오 극으로 만들 정도로 애착과 집념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1983년에는 본인이 직접 감독하고 출연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파블로 네루다

 

소설 속에서 네루다에게 헌사를 부탁하던 주인공 마리오는, 소설 서문에서 쓰지도 않은 소설의 서문을 써달라고 네루다에게 부탁했던 가공의 화자의 투영입니다. 또한 자신의 첫 단편집 '열정'을 썼을 때 네루다에게 한번 읽어봐 달라고 막무가네로 부탁했던 스카르메타 자신의 투영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소설은 칠레의 국민 시인 네루다를 무척이나 동경했던 스카르메타, 작가 본인의 이야기 처럼 느껴집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줄거리

소설의 배경은 칠레의 작은 해안 마을 이슬라 네그라입니다. 이슬라 네그라 근처의 포구에 사는 열일곱 청년 마리오 히메네스는 도통 고기잡이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시내에 나온 마리오는, 이슬라 네그라에 정착한 칠레의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오는 편지를 전담하는 우편배달부가 되고맙니다.

 

매일 편지를 배달하며 네루다와 친해지게된 마리오는 네루다를 통해서 '메타포' 그리고 시(詩)라는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됩니다.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된 마리오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틉니다. 상대는 동네 과부 주점의 딸 베아트리스. 마리오는 네루다의 시구를 암송하며 베아트리스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과부(베아트리스의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힘니다. 그러나 결국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축하하던 날 밤 마리오는 베아트리스와 사랑의 결실의 맺게되고, 베아트리스의 어머니도 두손을 들고 두사람의 결혼을 허락합니다.

 

한편 살바도르 아옌데를 지지했던 네루다는,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떠나게됩니다. 마리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이슬라 네그라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친 네루다. 그런 그를 위해서 마리오는 이슬라 네그라의 파도소리, 바람소리, 갈매기 소리 등을 녹음해서 보냅니다.

 

1971년 네루다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네루다의 수상 연설문 중계를 보며 이슬라 네그라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마리오는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얼마후 네루다는 병든 몸으로 이슬라 네그라에 복귀합니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에는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고, 9월 23일에는 네루다의 장례식이 치뤄집니다...

 


한편의 거대한 '메타포' 같은 소설

소설 속에서 마치 핵심 키워드 처럼 느껴지는 단어는 역시 '메타포' 입니다. 비가 오는 것을 하늘이 울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메타포라고 소설 속 네루다는 말합니다. 메타포라고 표현하니 생소하지만, 그것은 사실 네루다의 시를 듣고 마리오가 '제가 마치 선생님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같았어요'라고 은연중에 말해버린 것 처럼 누구에게나 내재된 것이고 일상적인 것이죠. 시(詩)라는 것의 출발도 바로 이런 메타포 이고, 그것은 또한 더욱 다채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드는 눈이기도 합니다. 네루다를 통해서 메타포라는 것을 알게된 마리오는 바다를, 파도를 그리고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 바라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사랑에 눈을 뜨게 된 것이죠.

 

마치 이 소설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메타포 처럼 느껴집니다. 역동적이고 경쾌한 소설의 분위기와 문체, 그리고 저질적으로 느껴지기 보다는 축제의 피날레처럼 느껴지는 성적 묘사 등은, 우리에게는 삼바로 통하는 남미 사람들의 정열과 열정의 메타포 같습니다. 또한 수시로 등장하는 위트와 익살이 넘치는 표현들은 역시 낙천적인 남미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만 같습니다.

 

시를 통해서 쌓여가는 네루다와 마리오의 우정은 시(詩) 만큼이나 아름답고 또 감동적입니다. 위대한 시인과 평범한 우편배달부가 쌓아가는 우정의 모습에서, 민중들과 함께 했던 시인 네루다를 향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또한 소설 속에서 네루다를 동경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마리오, 네루다가 노벨상을 탔을 때 '우리가 상을 탔다!'고 말하던 마리오의 모습은 시인 네루다를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했던 작가 스카르메타.. 그리고 칠레 국민들의 마음과도 꼭 같아 보입니다.

 

'이 이야기는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끝은 맺는다'

 

서문에서 화자가 밝힌 것 처럼, 경쾌했던 소설의 전반부의 분위기는 후반부에 병약한 몸으로 이슬라 네그라로 복귀한 네루다, 피노체트가 주도한 군사 쿠테타 그리고 네루다의 죽음 등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침울하게 가라앉습니다. 베를린 망명중에 이 소설을 발표했던 작가의 심정도 이처럼 침울 했을 것 입니다.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랭보)'

 

소설은 비록 침통하게 끝나지만, 그러나 '불타는 인내'... 랭보의 말을 인용한 네루다의 노벨상 수상소감에서 따온 이 소설의 원제는, 시인 네루다를 기리고 또 그의 의지를 계승하고자하는 작가의 의지 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은 또한 궁핍한 삶과 억압의 시대를 견뎌야만 했던 칠레 민중들을 향한 지지와 격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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