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고

 

 

 

새해를 맞이하여 독서열을 불태우며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왜인지 모르게 집중해서 읽히는 책이 잘 없었습니다. 책을 읽고는 있지만 마치 수박 겉 핥기 처럼 겉도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의욕만 너무 앞섰던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슬럼프에 빠진 것 같기도 했습니다. 딱딱하고 심오한 책들 그리고 치밀한 구성의 책들에 질려버린 저는, 그저 단순하고 쉽게 읽히는 혹은 본능에 충실한 책이 읽고 싶었습니다. 이런 저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던 소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입니다. 2016년 들어서 제가 가장 몰입해서 읽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양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1918년 카프카스 산맥의 작은 휴양지 키슬로보드스크 시에서 솔제니친은 태어났습니다. 교사 였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6개월 전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솔제니친은 홀어머니 아래에서 성장했습니다. 로스토프대학에서 물리와 수학을 전공한 솔제니친은 1941년 평범한 시골의 교사로 재직하다가 이해 6월에 병사로 소집되어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1942년에는 포병장교학교에 입학하여 포병 중대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솔제니친은 대위까지 진급하는 사이에 조국 전쟁 제2급 훈장 및 붉은 별 훈장을 받았습니다.

 

비교적 순탄했던 솔제니친의 삶에 비극이 찾아온 것은 1945년 이었습니다. 포병 대위로 복무하던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심코 독재자 스탈린에 대한 약간의 불만이 담긴 내용을 써보내게 되고, 이것이 탄로나 체포되어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당시 27세였던 솔제니친은 1945년부터 1953년까지 8년이라는 긴세월을 수용소에서 보냈으며, 수용소 생활이 끝난 뒤에도 3년동안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유배를 당해야 했습니다.

 

이토록 고통스럽고도 길었던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분명 비극적인 일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솔제니친에게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된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문학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솔제니친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암병동', '수용소 열도' 등과 같이 고립되고 사회와 단절된 곳의 이야기를 그토록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던 것 또한 바로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 되었기 때문입니다.

 

1962년에 발표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바로 이런 솔제니친의 처녀작인 동시에 그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로 만든 작품이기에 더욱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러시아의 양심'이라 불리는 작가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솔제니친 지음(민음사)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줄거리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이하 슈호프) 혹은 죄수번호 췌-854번, 그는 반역이라는 죄목으로 수용소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슈호프는 전쟁중에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하였습니다. 우군을 만난 슈호프는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으나,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슈호프는 자신 스스로 독일군 첩보대의 압잡이 노릇을 하기위해 풀려났다고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부정한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수용소. 새벽 다섯시, 기상을 알리는 망치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슈호프는 항상 기상소리와 함께 일어나곤 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제부터 왠지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침대에서 늦장을 부리던 슈호프는 간수에게 걸려 영창 삼일이라는 징계를 받게 되지만, 의외로 간수를 따라 끌려간 곳은 영창이 아닌 간수실이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영창 대신 간수실 청소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대충 청소를 마치고, 아침 식사인 야채수프를 먹은다음 슈호프는 작업을 면제 받을 심산으로 의무실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삼십칠 점 이 도인 슈호프의 체온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직도 어둠에 둘러쌓여 있는 수용소, 오늘도 영락없이 또 어김업없이 작업장으로 끌려가야하는 슈호프, 그리고  죄수들은 영하 이십칠도의 날씨와 주린 배를 부여잡고 점호를 실시하고 점호가 끝나면, 신체검사를 통과하고, 또 그 뒤에는 대열을 이루어 위병들의 인원체크를 통과하고....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다 거친 후에야 경호병들의 감시 속에서 작업장으로 향합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수용소의 하루가 시작된 것입니다....

 


오로지 본능에 충실한 수용소의 삶

어슴푸레한 새벽녘 그 혹한의 추위 속에서 점호를 실시하고, 칼바람을 견뎌가며 작업장으로 향하는 수용자들의 모습에서, 마치 영하 27도의 추위가 실제로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의 고단한 하루를 읽고 있노라니 저 역시도 매우 고단한 느낌이 드는 것 이었습니다. 그만큼이나 이 소설은 수용소 안의 삶을 생생하고 리얼하게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8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던 솔제니친에게는 아주 쉬운 일 이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군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흉내 조차 낼 수 없는 군대시절 무용담과 같은 것이죠.

 

저는 이 소설을 읽고 매우 원초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죽 한그릇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 조금이라도 추위에 떨지 않으려고 난로 곁으로 모여드는 수용자들, 다른 반 보다 먼저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일동 단결하여 식당으로 뛰는 모습 등. 이런 모습들은 어떠한 체면이나 품위도 품고 있지 않은 오로지 본능에 충실한 모습들이었습니다. 또한 오직 의식주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삶, 어떠한 미래 지향적인 계획이나 추상적인 것 보다도 당장의 주린 배를 채우고, 몸을 녹이고, 잠을 충당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그런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을 이어나가기 위한 처절한 사투 속에서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솔제니친은 또한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직 사회에서의 체면과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전직 해군중령 부이노프스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든 빌 붙어보려고 어슬렁 거리는 마치 하이에나와 같은 페추코프, 수용소에서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잃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알료쉬카 등, 주인공 슈호프 외에도 이런 다양한 등장 인물들의 모습은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 입니다.

 

담담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억울하게 그리고 부당하게 8년이라는 긴 세월을 수용소에서 보내야했던 솔제니친은, 격양되고 아주 거친 필체의 글을 써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그저 아주 담담한 필체로 쓰여졌습니다. 또한 정치색을 띄고 권력의 부당성에 대한 항거의 글을 쓰기보다는, 수용소에 수감된 한 인간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솔제니친의 선택은 현명했습니다. 절제된 필체로, 마치 수용소의 하루 일과에 대한 보고서 처럼 전개되는 소설은, 그 어떤 강력한 항의나 격양된 어조의 글보다 더 낱낱히 그리고 깊이있게 당시 권력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뿐만아니라 그것이 뚜렷한 주제의식과 정치색이 엿보이는 글이었다면, 그 당장의 순간에 만큼은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저 담담하게 써내려간 한 인간의 비극은, 오히려 숭고한 문학 작품의 경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분을 이기지 못해 큰소리로 호통을 치는 사람보다, 조근조근 나직한 목소리 그러나 확실한 어투로 말하는 사람이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오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은 정말 인상적인 부분 이었습니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토록 고단하고 치열했던 하루는, 삼천육백오십삼 일 중에서 단지 하루에 불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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