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현의 '나를 위로하는 그림'을 읽고


 


어렸을 때 부터 미술을 좋아했습니다. 남자들은 체육시간을 가장 좋아한다지만, 저는 이것저것 만들고 그리는 미술시간이 가장 설레었습니다. 미술 중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천재적인 소질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교내 혹은 작은 규모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여 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놓아버렸습니다. 드라마나 유명한 화가들의 삶에서 처럼 부모님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것도 아니었습니다. 커가면서 스스로 그림을 그리면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판단을, 혹은 그림은 취미로 그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아주 당연하게 해버린 것 같습니다. 


어느덧 성인이된 저는 그림을 그리는 것 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시절 그림을 그릴 때 느꼈던 즐거운 기분만은 마음 한켠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미술 혹은 그림에 관심이 많고 또 그림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일반적인 독자들을 상대로한 그림과 관련된 책들은 대부분 비슷한 포메이션을 취하곤 합니다. 주로 명화들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과 거기에 작가의 개인적인 감상평이나 느낌을 담은 글들을 곁들이는 구성입니다. 이번에 제가 읽은 책, 우지현의 '나를 위로하는 그림' 역시 비슷한 구성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위로하는 그림 - 우지현 지음(책이있는풍경)


명화에 곁들인 에세이의 조화

작가인 우지현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만, 작가의 간단한 프로필을 통해서 그녀가 어린 시절 부터 항상 그림과 함께해 왔으며 현재는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그정도 뿐이었지만, 책에 고스란히 담아낸 그림과 화가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작품을 이해하는 안목을 통하여 그녀에게서 한 분야의 전문가적인 면모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열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삼박자가 좋은 책이었습니다. 작가의 에세이, 또 그와 관련되거나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던 그림 한 점, 그리고 그림에대한 부연 설명의 삼박자가 잘 버무려져 있었습니다. 일상, 관계, 여행, 삶이라는 네가지의 키워드와 관련된 작가의 에세이는 화려하지 않고 소소하고 담백한 맛이 좋았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작가에게 그림은 지치고 힘든날의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였지만, 뿐만아니라 때로는 커피 한잔, 책 한권의 여유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때로는 어머니 아버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부모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또 때로는 여행의 설레임을 상기시켜주기도 했습니다. 

 

<293호 열차 C칸> - 에드워드 호퍼


명화들을 수록해놓은 책들이 좋은 이유는, 쉽게말하자면 눈이 즐겁다는 것인데, 엄선된 명화들을 고화질로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도 역시 작가가 엄선한 명화들이 저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특히, 작가가 엄선한 그림들은 빈센트 반 고흐, 마르크 샤갈, 클로드 모네, 프리다 칼로 등 대중들에게도 어느정도 익숙한 화가들의 그림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토머스 윌머 듀잉, 빈센초 이로리, 존 싱어 사전트, 귀스타브 카유보트, 프란츠 리차드 운츠버거, 윈슬로 호머, 찰스 커트니 커란, 로버트 루이스 리드, 등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는 덜 익숙한 화가들의 그림을 많이 수록했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물론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위의 화가들 한명 한명이 빼놓을 수 없는 대단한 화가들이겠으나, 비전문가인 저에게는 생소한 화가들의 그림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림들은 더할나위 없이 훌륭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책에 수록된 거의 대부분의 그림들이 여성을 모델로한 그림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가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단편적인 이유로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겟으나, 개인적으로는 남성들 보다 상대적으로 섬세한 여성을 모델로한 그림들이 화가가 그림을 통해서 표현하고자하는 느낌 혹은 분위기를 더욱 잘 살려내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림은 어떤 해답을 알려주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프롤로그에서의 말처럼 그림은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킬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림과 마주하고, 점점 그림에 빠져드는 순간 그 순간은 우리가 나 자신과 온전히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심연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 그 시간이야 말로 어떤 달콤한 위로의 말보다도 우리를 보듬어 줄 것이며, 삶에 있어서 귀중한 자양분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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