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하의 '양철북'을 읽고
서점에서 익숙한 제목의 책 '양철북'을 발견하고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에 구매하였습니다. 뒤늦게 알게되었지만 그 유명하고 익숙한 제목의 양철북은 독일의 작가 귄터 그라스의 소설이었고, 제가 골라잡은 양철북은 우리나라의 시인 이산하가 쓴 성장소설 '양철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 순간 이 소설은 그 유명하다던 그 양철북이 아닐지라도, 저에게는 참 훌륭한 소설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시인 이산하. 본명 이상백
이상백, 이 륭, 이산하 그리고 양철북
이산하의 본명은 이상백입니다. 1960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상백은 부산에서 중, 고등학교를 나와 1979년에 경희대 국문학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하였습니다. 1982년 문학동인지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를 발표하며 시단에 등단했을 때, 그의 필명은 '이 륭' 이었습니다.
1980년대 운동권의 중심에 섰던 이 륭은 무려 30개의 가명을 사용하며, 5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경찰의 체포망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수배중이던 1987년 3월, 김지하의 '오적'이래로 최대의 필화사건이라는 장편 연작시 '한라산(제주도 4.3 사건을 다룸)'은 그가 '이산하'라는 필명으로 세상에 내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이산하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 이 이름많은 시인의 또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철북, 양철북. 소설의 주인공의 이름이자 제목인 양철북은 이산하가 고교시절 실제로 겪었던 한 스님과의 짧지만 인상적이었던 여행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입니다. 소설의 80%는 이산하의 실제 경험담이라고 하니, 소설속 철북이의 성장기는 곧 저자 이상백의 성장기요, 또한 그의 문학적 모태 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양철북 - 이산하 지음(시공사)
양철북의 줄거리
자신의 아버지가 귄터 그라스라고 말하는 소설의 주인공 양철북은 고등학교 2학년이자 작가지망생입니다. 철북이는 방학 때마다 외할머니인 견성 스님이 주지로 있는, 경산 골짜기의 절, 수국사로 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곤 했습니다. 1977년 7월 중순 수국사에 도착한 철북은 으레 자신의 방처럼 사용하던 요사채로 향햡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백구두 한켤레와 한자로 묵언정진이라고 쓰여진 종이가 붙어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철북은 옆방에 짐을 풀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묵언정진을 하는 스님에게 공양 심부름을 하게된 철북은, 법당안에서 모기들에게 새까맣게 자신의 등판을 내어주고도 미동조차 하지않고 면벽참선을 하고 있는 스님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철북이와 일명 백구두 스님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몇일 후 묵언정진을 마친 백구두 스님, 만행(여러 곳으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닦는 온갖 수행)중인 법운 스님은 수국사를 떠날 채비를 하는데, 철북의 외할머니 견성스님은 철북에게 인생 공부도 할 겸, 법운 스님을 따라 갈 것을 권합니다. 영문도 모른체 철북은 법운 스님과 동행하게 되고 이로서, 화두를 깨치고자 하는 젊은 스님과 문학소년 철북이의 짧고도 깊은 여행이 시작됩니다.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동행
불교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이산하의 소설 양철북은 소설 이면의 깊은 의미 같은 것들을 제쳐두더라도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길을 나선 법운 스님과 철북이는 청도의 운문사, 섬진강 자락의 성 베두윈 여자 수녀원, 깊은 골자기의 암자 등을 거쳐 오대산 상원사 그리고 적멸보궁으로 향합니다. 스님과 철북은 이곳 저곳을 거쳐가지만,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어떤 굴곡적인 사건이 아니라 대부분 스님과 철북이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부산에서 성장한 이산하는 흉내내기가 아닌 걸쭉한 부산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하여 소설에 정겨움을 더했습니다. 구수하게 오가는 스님과 철북이의 대화는 저절로 웃음 짓게 만들기도 하였지만 때론 삶에 대한 예리한 성찰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작가지망생 '고삐리'가 주인공인 소설답게 소설 속에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최인훈의 광장, 김동인의 감자 등과 같이 대중들, 특히 철북이 또래의 청소년들에게 권장 할 만한 주옥같은 문학 작품들에 대한 언급이 수시로 등장해서 참 좋았습니다.
오스카는 왜 양철북을 두드리는가?
오대산 상원사 그리고 적멸보궁(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에서 백구두 스님과 철북이는 짧은 여행을 뒤로 한 채 작별합니다. 스님과 철북이의 여행은 화두를 깨치고자하는 청년 스님과 작가지망생의 성장기 였습니다. 소설은 법운 스님이, 자신의 피로 경전을 배껴적는 혈사경(血寫經) 수행에 들어가려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납니다. 그것은 아마도 백구두 스님의 성장이자 마치 성년식 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편 소설 속에서 철북이의 성장은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줄탁동시(병아리와 어미 닭이 동시에 껍질을 쪼아 깨뜨린다)라는 말 처럼, 알을 깨기위해 투쟁하는 어린 병아리 철북에게 법운 스님과 여행중에 만난 인연들 그리고 여행 그 자체가 마치 어미 닭 처럼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듯 합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김지하의 '오적' 이래로 최대의 필화 사건이라는 연작시 '한라산'을 세상에 내어놓은 저자 이산하의 스토리를 알게되었을 때, 저는 마침내 알을 깨고 나온 철북이, 성장한 철북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에서 성장을 멈춘 난쟁이 오스카의 양철북은 불의와 잔인에 침묵하는 독일 시민들의 의식을 두드리는 영혼의 북소리 였습니다. 이산하, 아니 철북이 역시 그렇게 양철북을 두드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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