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고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다가 외출을 하기 쉽지 않은 날씨 덕분에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독후감 작성을 미루었던 책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오늘은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대한 독후감을 작성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전에 읽은 책이었지만 쉽사리 독후감을 작성하지 못했던 것은, 워낙 유명하고 깊은 의미를 지닌 작품에 대한 독후감을 작성하는 부담감이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 책에서 제가 느낄 수 있었던 그 무엇(?)인가를 글로 제대로 표현해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파일럿으로 활동했던 '리처드 바크'
리처드 바크
지금은 80의 노인이된 리처드 바크는 1936년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롱비치 주립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퇴학을 당한 그는 공군에 입대해서 비행기 조종사가 됩니다. 1958년부터 자유기고가로 활동을 했으며, 비행기 잡지의 편집 일을 담당하던 중, 베를린의 위기로 미국 공군에 재소집되어 프랑스에서 1년 동안 복무하기도 합니다. 이 후 상업비행기의 조종사로 일하며 년간 3000시간 이상의 비행 기록을 세웠습니다.
어느날 저녁 해변을 거닐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끌려 그가 써내려간 소설 '갈매기의 꿈'은 무려 열여덟 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서부해안의 젊은 세대들이 손으로 베껴 써 가면서 이 작품을 돌려읽기 시작했고, 그것이 몇해에 걸쳐 일반인들에게 퍼져 나갔습니다. 1970년 정식으로 초판이 출간된 갈매기의 꿈은 출간 뒤 5년만에 미국에서만 7백만 부가 판매되었으며, 전세계의 독자들에게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리처드 바크가 그날 해변을 거닐며 들었던 의문의 목소리는 아마도 자신의 마음속 깊은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비행기 조종사로 활동하면서도 그는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파일럿이라는 굴레에 가둬두지 않았던 리처드 바크의 모습이 마치 소설의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갈매기의 꿈 - 리처드 바크 지음(현문미디어)
'갈매기의 꿈'의 줄거리
다른 수천마리의 갈매기들이 한 척의 배에서 던져주는 먹이감을 차지하기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로 나는 연습을 하고있는 갈매기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단지 먹이를 찾기위해서 날아오를 때, 그 한마리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더 높이,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완벽한 착지를 연습하였습니다. 조나단의 부모들 조차 그런 그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다른 갈매기들 처럼 먹이를 찾는데에 힘쓰길 권했습니다. 부모님의 권유대로 보통의 갈매기들 처럼 행동하기위해 조나단은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조나단의 머릿속에는 단지 던져주는 빵조각을 차지하기위해 몸을 날리는 이런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생각만이 선명해질 뿐이었습니다.
조나단은 다시 비행연습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코 쉽지않은 도전이었고, 때론 몸을 크게 다쳐 자신의 신체적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혹독한 훈련끝에 결국 조나단은 갈매기의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로 날 수 있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나는 갈매기가 된 것입니다. 여러가지 비행술을 터득한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다른 갈매기들에게 자신이 한계를 돌파한 이야기를 전해준다면 모두들 기뻐서 날뛸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나단에게 돌아온 것은 뜻밖에도 보통의 갈매기와는 다른 행동을 하는 이상한 갈매기에 대한 배척이었습니다. 조나단은 무리로 부터 추방을 당했습니다. 무리로부터 추방당한 조나단은 외로운 날들을 보냈지만, 오히려 더욱 자유롭게 비행연습에 매진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그들이 찾아왔습니다. 조나단과 같은 생각을 가진 갈매기들이 조나단을 데리러 온 것입니다. 조나단은 그들을 따라서 그들의 보금자리인 더 높은 곳으로 향합니다. 마치 천국과도 같은 그곳에서 조나단은 더욱더 자신의 비행기술을 갈고 닦았으며, 훌륭한 스승의 도움으로 마침내는 시간과 공간, 신체와 정신적 제약마저 초월하는 이동의 경지에 이릅니다. 그러나 조나단은 궁극의 경지에 도달했음에도 가슴한켠에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을 추방했던 갈매기 무리였습니다. 결국 조나단은 스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신이 살던 곳으로 내려오게 되고, 갈매기 무리들과 떨어진 곳에서 홀로 비행연습을 하고있는 플레처 린드 시걸이라는 어린 갈매기와 마주하게 됩니다....
누구나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다
빵부스러기를 차지하기위해 날아드는 갈매기들의 삶을 과연 무가치하다고만 말할 수 있을 까요? 그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루하루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위한 사투는 분명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듯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기위해 다람쥐 쳇바퀴속을 달리는 우리 대부분 사람들의 삶 역시 분명 나름의 가치가 있는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과 같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비상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잘 가공하기만하면 몇 억 혹은 몇 십억을 호가 할 다이아몬드 원석이 고작 300원짜리 연필심으로 사용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씁씁한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갈매기 중의 하나였던 조나단이 갈매기의 한계를 넘어서는 비행을 할 수있었던 것 처럼, 우리 모든사람들에게도 각자 저마다에게, 한계를 넘어서 궁극의 경지에 이를 만한 씨앗이 내제되어있다는 것을 리처드 바크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다만 약간의 월급에 타협한체 살아가고, 그 씨앗은 성장 혹은 연마를 멈추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한계를 벗어던졌을 때 해낼 수 있는 일이란...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갈매기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속 300km, 400km의 속도로 날더니 급기야는 순간이동을 해버렸습니다. 판타지 소설을 방불케하는 설정에 어이가 없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나단이 해낸 시간과 공간, 신체와 정신의 구속을 뛰어넘는 터무니없이 어이없어보이는 일들을, 우리들 역시 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갈매기 조나단이 그랬듯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제약과 굴레, 정신적 육체적인 껍질마저도 벗어던졌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죠.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벗어던졌을 때 해낼 수 있는 일이란, 갈매기가 순간이동을 하는 것 만큼의, 아니 그 이상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어느새 소설의 터무니 없었던 설정은 깊이있는 깨달음으로 다가왔고, 혹은 스스로 너무 많은 제약과 굴레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으로도 다가왔습니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부모 갈매기들 처럼, 부모 조차도 안주하기를 권하는 세상에서 자라난 우리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고, 제약과 굴레 속에 가두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안주함으로서 얻을 수 있었던 다만 약간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에 만족한체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순간이동 조차 해낼 수 있었던 갈매기가 단지 빵부스러기를 쟁취하기 위해 날아오르는 모습이며, 다이아몬드로 거듭날 수 있었던 원석이 단지 가공하기 수월한 연필심에 그치는 순간인 것입니다. 분명 빵부스러기를 쫓는 갈매기, 혹은 연필심 역시 가치없진 않습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투쟁일 테니, 그러나 모두가 단지 그것에 만족해 버렸다면 인류는 아마도 여전히 수렵이나 체집에 의존한 삶을 살고있었을 것입니다.
한계를 초월하여 날아올랐던 조나단과 같은 갈매기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조금씩 변해갈 수 있었습니다.아주 오래전의 인류가 본다면, 지금의 하늘을 나는 비행기나, 스마트폰 혹은 무인으로 움직이는 자동차 같은 것들은 확실히 갈매기가 순간이동을 하는 것 만큼의 터무니없이 놀라운 일 일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더 빛나는 보석이 될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렇게 빛나는 보석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단지 자신만의 빛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하는 어린 갈매기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나단이 갈매기 무리들과 멀리 덜어진 절벽에서 홀로 날아오르는 어린 갈매기 플레처 린드 시걸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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