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E - 토가시 요시히로




헌터X헌터는 단언컨데 '원나블'이라고 불리는 일본 만화 삼대장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를 발아래 두었을 법한 만화이다. 적어도 나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을 하고있다. 다만 연재만 제대로 되었다면 말이다....헌터X헌터의 흥미진진함은 마치 주변의 사람들을 모조리 오징어로 만들어버리는 조인성과 같이 다른 만화들을 시시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점에 있어서 작가 토가시 요시히로는 정말 천재적이라고 느껴진다. 그러나 신은 그에게 모든것을 주진 않았다. 신은 그에게 천부적인 이야기꾼의 재능을 선사하는 대신 성실성과 책임감에 관한 부분을 누락시킨 것이 분명하거나 아니면 확실하다. 


헌터X헌터의 작가 '토가시 요시히로'


천부적인 재능을 악용한 그의 횡포 앞에서 독자들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마는데, 그 모습이 흡사 여름 휴가철의 장사꾼과 관광객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바가지 씌우는 걸 다 알면서도 살 수 밖에 없는 휴가철의 호구 관광객과 같은 마음으로, 독자들도 토가시 요시히로에게 불성실하다느니 책임감이 없다느니 투덜거려도 결국엔 또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유유백서가 그 이상하고 급조된 결말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3대 만화라고 불렸던 이유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헌터X헌터의 연재는 멈춘지 오래고, 또 토가시의 만화는 보고싶어져서 보게된 것이 바로 그의 초기 작품인 '레벨E' 이다.


레벨E - 토가시 요시히로(학산문화사)


레벨E는 총3권 16화로 구성되어있는 그리 길지도, 그렇다고 그리 짧지도 않은 분량의 만화이다. 1995년부터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작품인데, 당시 토가시가 어시스트를 쓰지않고 혼자서 작업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에 도전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월 1회만 연재했다고 한다. 제목인 레벨E는 당시 그가 보던 외계인 영화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사실 에일리언(Alien)의 스펠링을 E로 착각한것이 그대로 '레벨E'라는 제목이 되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레벨E의 줄거리

현재 지구에는 수백 종의 외계인이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오직 지구인뿐....이라는 멘트로 만화는 시작된다. 기념비적인 자취생활의 첫날, 고교생 유키타카는 황당하게도 자신보다 먼저 자신의 자취방에 들어와있는 의문의 사내와 마주하게된다.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의문의 사내는 사실 도그라 별이라는 행성의 왕자로 전우주적 회의에 참석하러가던 중 우주선의 결함으로 지구에 불시착하였고 기억을 상실한 상태. 왕자는 외계인을 조사하는 지구의 연구원들에게 쫒기는 처지에 놓이고, 지구에 불시착한 왕자를 찾기위해 도그라 별 왕립 호위군 대장 크래트프 및 대원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편 거리에서 불의를 보고 참지못한 왕자는 불량배들 중 한명을 죽여버리게 된다. 왕자와 조우한 크래프트 및 대원들은 왕자가 죽인 사람이 사실 우주 최고의 전투 종족인 디스쿤의 성인임을 알게된다. 이리하여 왕자, 유키타카 그리고 왕립 호위군 대원들은 동료의 복수를하려고 몰려온 디스쿤 성인들에게 둘러쌓이는 위기에 처하는데.......



위의 줄거리만 보면 매우 진지하고 스릴넘치는 액션물일거라고 추측되지만, 반전은 주인공 도그라 별 왕자가 우주 최고의 천재적인 두뇌와 최악의 성격을 가진 트러블메이커(좋게 말하면 장난꾸러기)라는데에 있다. 내가 요약한 것은 첫 번째 이야기에 관한 줄거리이지만, 만화는 외계인 혹은 오컬트적인 내용의 연작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주인공 도그라 별의 왕자가 있다는 것. 간단히 요약하면 '장난의 스케일이 좀 큰 도그라 별 왕자의 좌충우돌 활극'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유유백서와 헌터X헌터를 통해서 토가시 요시히로의 전투만화 혹은 소년만화는 충분히 감상한 나에게 레벨E는 토가시의 다른 장르 혹은 다른 느낌의 만화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레벨E는 코믹물이 분명한데, 그렇지만 완전히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담아낸 것이 아니라, 나름 의미있는 구석도 있는 듯 하고, 스토리 구성이 잘된 코믹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또한 토가시 요시히로의 개그코드가 나에게는 잘 맞았다. 한편 토가시 요시히로의 장기는 이를테면 이런 것인데, 이야기를 어느 방향으로 지레짐작하게끔 독자들을 몰아넣은 다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홱하고 틀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그의 장기는 코믹물인 레벨E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레벨E를 보면서 토가시 요시히로 특유의 그림체가 정겹게 느껴졌다. 그림체에서 유유백서와 그리고 당시에는 아직 연재 전이었던 헌터X헌터를 느낄 수 있었다. 난 개인적으로 그의 그림을 한번도 잘 못그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성의가 없다고 느껴진 적은 다소 있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초기 작품이어서 그런지 매우 성실하게 그려낸 것 같았고, 완성도도 높았다. 아무튼 왠지모르게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만화책이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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