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맑은날의 감은사지 삼층석탑!

 

 

 

울산에서 자동차를 타고 경주로 가는 루트가 몇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길은 주전해변과 강동해변을 지나 양북면을 거쳐서 경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물론 더 빠른 방법은 울산공항이 있는 북구를 거쳐서 외동과 불국사를 지나 경주로 들어오는, 7번 국도를 이용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에는, 31번 국도를 타고 양북면을 통해서 경주로 가곤 합니다. 비록 더 멀리 돌아서 가게되는 비효율적인 루트지만, 바다의 풍경을 벗삼은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기쁨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쁨은 저로하여금 더 멀리 돌아서 가야하는 수고스러움을 자꾸만 자처하게 만들었습니다.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감은사지 (후지 X70)

 

장마 때문에 한동안 해를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왠일인지 해가 환하게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주전과 강동해변을 지나고 양남면을 지나 또 문무대왕릉을 지나고 양북면으로 진입할 때, 언덕위에서 묵묵히 그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 두 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언덕 위에 우두커니 서있는 감은사지 삼층석탑 (후지 X70)

 

감은사지 삼층석탑. 거의 대부분 차의 창문으로 스치듯 지나치곤 했는데, 오늘은 맑은 날씨 때문인지 잠시 차를 세우고 탑에게 다가가 보기로 했습니다.

 

선조들이 남긴 유산을 터전으로 삶아...(후지 X70)

 

입구에서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나물과 과일, 채소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은 문화재와 관련된 업계 종사자들을 먹여살릴 뿐만아니라, 이렇듯 동네 주민들에게도 삶의 터전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는 감은사 (후지 X70)

 

감은사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이 곳에 절을 세우기 시작하여 신문왕 2년(682년)에 완성한 절입니다. 지금은 절터 만이 남아 그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동해의 대왕암(지금의 문무대왕릉)에 장사를 지낸 뒤,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수 있도록 금당 밑 부분에 특이한 구조로된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 감은사지의 특징입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국보 제112호 (후지 X70)

 

감은사는 터만 남았지만, 절 앞에 세운 쌍둥이 탑은 천삼백년이 넘는 세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뚝솟아 있습니다. 국보 제112호,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는 가장 높고 우람한(13.4m) 두 탑은 화려하다기 보다는 담백하고 순수한 모습이 돋보입니다.

 

투박하고 삼삼한 매력의 두 탑은, 그러나 주목할 만한 의의를 품고 있습니다. 바로 통일신라시대 이후 세워진 모든 삼층 석탑들의 시초가되는 탑이라는 점입니다. 석탑은 백제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나 목탑의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복잡한 목탑의 구조를 따르던 석탑의 구조가 단순화된 그 출발 점이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라는 것이죠. 결국 단순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동탑 (후지 X70)

 

감은사지 삼층석탑. 서탑 (후지 X70)

 

그 유명한 불국사 석가탑다보탑이 마치 톱스타 처럼 느껴진다고 하면,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향토적인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마치 투박한 아주머니의 미소 그리고 무심한듯 하면서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달항아리와 같은 느낌이죠. 두 탑은 아무런 욕심이 없어 보입니다...

 

왠지모를 그리움이 느껴지는 감은사지 삼층석탑 (후지 X70)

 

두 탑을 뒤로하고 이제 다시 길을 나섭니다. 두 탑을 보면 왠지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두 탑은 아마도 지금은 터만 남은 감은사를.. 그리고 화려했던 그 옛날을 그리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끔씩 찾아오겠다고 탑에게 다짐합니다. 두 탑은 저더러 언제든 찾아오라고 합니다. 자신들은 천삼백년이 넘도록,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서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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