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고

 

 

 

오랜만에 알라딘 중고서점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동일한 작가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읽는 것은 하루키의 작품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소설에 대한 불만

저는 분명 하루키 소설의 마니아라고 할 수 있지만 하루키의 소설에 대한 불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가령 하루키의 소설들은 대체로 무책임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들은 매우 흥미진진한 전개와 몰입도를 보여주지만 결국에는 거의 대부분이 특유의 허무주의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소설속에 기이한 사건들이나,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많지만, 결코 그에대한 명쾌한 해석이나 깔끔한 결말 없이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버리는 식입니다. 꼭 충분한 해석과 깔끔한 결말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라고 말 할 수 는 없지만, 거의 모든 작품에서 소설 속의 다양한 요소들을 수습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끝내버리는 것은 역시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키의 소설들은 제목과 내용은 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항상 동일합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하루키 특유의 스타일이라고 말 하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식상하다고 말 할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처녀작

어떤 작가의 처녀작(첫 작품)을 읽는 것이 매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소설)'를 읽고 세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녀작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작가 특유의 스타일과 개성이 가장 잘 살아있는,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하루키의 개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으로 하루키는 '군조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하게 됩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문학사상사)

 

이 작품은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로서, 1970년 8월 8일에 시작하여 8월 26일에 끝나는 18일 동안의 이야기 입니다.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는 '나'는 방학을 맞이하여 고향인 항구도시로 내려와 생활하게 됩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 일명 '쥐'와 바에서 맥주를 마셔대며 시간을 보네게 됩니다. 어느날 바의 화장실에서 만취해 쓰러져 있는 여자를 집까지 바래다 주게 되고, 새끼손가락이 없는 그녀와 표면적으로는 친해진 듯 하지만 알수없는 고독감은 커져만 갑니다.


 

하루키의 장기인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는 처녀작인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스토리의 구상 보다는 독자를 매혹시키는 하루키의 필력(문장력)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루키의 후기 어떤 작품들 보다도 경쾌하고 신선한 문장들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하루키 특유의 허무주의 역시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키는 굉장히 신선하고 흥미를 자극하는 에피소드들을 소설속 곳곳에 배치하고 있지만, 결국 명쾌한 해석 없이 마무리하며 독자의 판단에 맡겨버리는 구성을 취합니다. 이렇듯 작품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공허함과 상실감의 느낌은 훗날의 하루키를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상실의 시대'를 예견하기도 합니다.

 

가공의 인물 데릭 하트필드

이 소설에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데릭 하트필드'라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에서 하루키는 글쓰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하트필드에게 배웠다고 쓰고 있습니다. 불모의 작가였던 하트필드는 어느날 한손에는 히틀러의 초상화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우산을 펴들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뛰어내림으로서 생을 마감합니다. 소설의 곳곳에서 하트필드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 하거나 인용하기도 하며 매우 구체적인 설명을 보태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의 후기에는 하루키가 하트필드의 무덤을 찾아간 일화로서 작품의 후기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지금부터인데, 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하트필트라는 소설가에 대한 내용이 매우 인상적인 나머지 그의 작품들을 검색해 본 결과, 그는 하루키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설속에 왜 이런 장치를 해 두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마무리

포스팅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역시 그렇습니다. 무엇인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참으로 깊이있고 의미있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또 아무것도 아닌 그런 면입니다. 하루키의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역시 하루키에게 군조신인상을 수상하게 만든 작품이면서도, 주위 사람들로 부터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라는 말을 듣게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이처럼 하루키의 작품은 그 나름의 쓴소리도 많이 듣고 있지만, 개인적으론 역시 특유의 허무주의에 대해서 불평하면서도 앞으로도 읽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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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ockm.tistory.com BlogIcon S매니저 2013.06.14 0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래요~

  2. Favicon of https://animana.tistory.com BlogIcon 블랑블랑 2013.06.14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어쩌다보니 하루키 소설은 아직 하나도 안 읽어봤어요.ㅎㅎ
    근데 거의 다 읽은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처음 한 두권 읽을 때는 엄청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데 계속 읽다보면 결국 그 타령이 그 타령이라고...^^;;;
    근데 팬이 워낙 많다보니 궁금해서 저도 언제 꼭 읽어봐야겠어요.

    • Favicon of https://bonobo007.tistory.com BlogIcon amuse 2013.06.16 0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루키의 작품이 대부분 비슷비슷 한것은 사실입니다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읽게 만드는 힘 또한 있죠 ㅎㅎ
      아직 하나도 안읽어 보셨다면 처녀작인 이책을 정말 추천합니다 ^^

  3. Favicon of https://nonkimtrip.com BlogIcon 로앤킴 2013.06.16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처럼 좋은 책들이 많은데, 저는 한달에 1권 겨우 읽습니다.
    앞으로 책을 읽는 습관을 길러야 될것 같아요.ㅎㅎ
    잘 보고 갑니다~

  4. Favicon of http://life-lineup.tistory.com BlogIcon +요롱이+ 2013.06.16 1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좋은 글 너무 잘 보고 갑니다.
    아무쪼록 평안한 주말이 되시길 바랍니다.

  5. Favicon of http://hyvaa.tistory.com BlogIcon 2013.06.16 1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하루키 소설을 참 좋아하는 편이라
    정신없이 포스팅을 읽었네요 :D
    요게 처녀작이군요. 시간내서 읽어봐야겠어요.

  6. Favicon of https://june20y.tistory.com BlogIcon 눈깔 사탕 2013.06.17 0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에 상실의 시대 책만 꽂혀있고, 손도 대지 못했는데,,;; 읽어보고 요 처녀작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허무주의가 어떤것인지 한번 느껴봐야겠네요~ㅎㅎㅎ

  7. Favicon of https://bamnwind.tistory.com BlogIcon 죽풍 2013.06.17 0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바빠서 책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 포스팅을 보니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좋은 소식 접하고 갑니다.
    새로운 한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8. BlogIcon 서영임 2015.06.22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가상인물이였어요
    중간중간 검색하려다 다읽고 검색해보니..
    님의 포스팅을 보고 알았어요..
    아..또 허무해..^^그랬죠
    저두 하루키 팬입니다
    그의 중독성 있는 필력에 매료되어~~
    하지만 님의 생각과 저도 같은 이유로 약간 화가 난답니다..
    독자에게 너무 많은걸 맡겨 버리는 하루키~~~

    • Favicon of https://bonobo007.tistory.com BlogIcon amuse 2015.06.23 1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방문 감사합니다 ^^ 데릭하트필드라는 가상의 인물에 대한 설정을 소설 안에서 뿐만아니라 후기에서까지 유지하는 것이 참 신선하고 놀라웠습니다. 소설후기에 데릭 하트필드의 무덤을 찾아간 일화가 나오길래 저도 실존인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ㅎㅎ하루키 답다고나 할까요,아니면 하루키 마음속의 누군가를 데릭 하트필드라는 가명으로 표기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