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괘릉(원성왕릉) 가을 나들이!




울산에서 경주로 향하는 국도, 불국사보다도 먼저 경주에 당도했음을 알리는 유적 '괘릉'이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원성왕릉'인데 괘릉이라는 별칭으로 더욱 익숙한 곳입니다.


괘릉-경주시 외동읍 괘릉리(후지X70)

 

경주 괘릉은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무덤이라고 추정되는 왕릉입니다.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 원성왕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료들을 근거로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정하였고, 거의 유력해서 도로 표지판과 괘릉을 설명하는 안내문에도 '원성왕릉'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넓은 주차장 그리고 기와로된 건물은 화장실(후지X70)


괘릉을 자세하게 알고싶다면 문화광광해설사의 집으로(후지X70)


사실 괘릉은 경주 시내에서 먼곳에 위치하고 또한 볼거리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붐비는 그런 유적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넓은 주차장화장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세한 설명을 해주실 문화관광해설사도 계십니다.


자연의 품에 안긴 원성왕릉(후지X70)


원성왕릉, 괘릉은 규모는 작지만 역사적으로 또는 미학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유적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단지 왕릉까지 이어지는 잔디밭과 능을 둘러싼 소나무들의 풍경 만으로도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 입니다.


문인상과 무인상 그리고 돌사자(후지X70)


문인상과 무인상 그리고 돌사자(후지X70)


괘릉의 입구에는 돌로 조각한 문인상 1쌍과 무인상 1쌍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또 돌사자 2쌍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바로 괘릉의 첫 번째 관람포인트입니다.


서역인의 모습을 닮은 무인상(후지X70)

 

디테일한 옷 주름이 인상적인 문인상(후지X70)


늠름하면서도 귀여운 돌사자(후지X70)


서역인? 혹은 금강역사?

주목해야할 부분은 바로 무인상의 모습입니다. 굵은 팔둑과 곱슬곱슬한 턱수염, 부리부리한 눈 등이 신라인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서역인'의 모습에 가까습니다. 이는 아라비아 계통의 상인의 모습으로 추정되어, 당시 통일신라의 국제성을 잘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무인상의 모습이 불교의 수호신 '금강역사'를 모델로 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금강역사'와도 충분히 닮은 모습입니다...


무인상의 정체는 참 아리송하지만, 무인상을 비롯한 괘릉의 석상들은 신라의 조각품들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것으로 손꼽힙니다.


괘릉, 원성왕릉 - 사적 제26호


괘릉이라는 별칭은?

그럼 이제 원성왕릉이 괘릉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된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원래 이곳에 능을 마련하기 전에 작은 연못이 있어 그곳을 메우고 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능 내부의 현실에 물이 고이기 때문에 관을 바닥에 놓지 못하고 관을 수면 상에 걸어 안장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속설 때문에 이 능은 괘릉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게 된 것입니다.


능을 따라 돌며 십이시진상을 찾아보기. 마馬(후지X70)


무복을 입고 무기를 든 십이지신상. 신申(후지X70)


원성왕릉은 아래부분을 돌로 두르고, 그 바깥쪽에는 돌난간을 둘러 장식을 하였습니다. 능 아래부분의 둘레석 사이사이에는 십이지신상이 양각으로 새겨진 호석을 배치하였습니다. 능을 따라 돌며 무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십이지신들을 살펴보는 것 또한 괘릉의 관람포인트 중의 하나입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생생함을 잃지않은 십이지신상에서 신라 석공들의 뛰어난 솜씨가 느껴집니다.


원성왕릉은 봉분만 언덕처럼 자리하던 여느 경주의 왕릉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통일신라시대의 왕릉 중에서 가장 완비된 모습을 갖추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비록 큰 규모는 아니지만 여러가지 이야기를 품고있는 괘릉, 원성왕릉은 재미있기도하고 또한 신비롭기도하면서 한편으로는 매우 깊은 향기를 남기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