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읽고

 

 

 

책 읽는 것을 좋아라하지만 저는 유명한 작가들의 대표작들만 겨우 섭렵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이를테면 헤밍웨이의 작품은 노인과 바다를, 카뮈의 작품은 이방인을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데미안을 겨우 읽어보았을 뿐 이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 제일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연한 계기로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라는 소설을 읽어보았습니다. 크눌프 역시 매우 유명한 작품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데미안에 비해서 낯설게 느껴지는 작품일 것입니다.

 

크눌프를 읽고,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만이 꼭 최고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 임을. 데미안은 데미안대로 좋고, 또 크눌프는 크눌프대로 좋았던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분신과도 같은 방랑자 '크눌프'

 

헤르만 헤세와 크눌프

크눌프는 책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크눌프에 등장하는 세편의 이야기(초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종말)는 1907년 ~ 1914년 사이에 각기 다른 잡지에 실렸었는데, 1915년에 '크눌프 삶의 세 이야기'라는 부제와 함께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출간되었습니다. 

 

작품해설을 통해서 크눌프는 헤세의 여러 작품의 주인공들과 형제이며 헤세 자신의 분신이기도 하다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크눌프는 헤르만 헤세가 매우 아끼고, 애착을 가졌던 주인공이자 작품인 듯 합니다. 헤세가 독자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도 그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브루노(헤세의 아들)와 함께 언젠가 몇 년 만에 나의 고향 골짜기와 고향 도시 칼브를 다시 찾았을 때 놀라운 경험을 했었네. 내가 거리 곳곳에서 보게 되거나 살아 있다고 느낀 것은 내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모습이 아니었네, 그것은 크눌프 였네. 내게는 크눌프와 고향이 하나였다는 것을 그때서야 분명히 깨달았네.' 

 

크눌프의 자유로운 방랑의 삶은 아마도 헤르만 헤세가 갈망하던 삶이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또한 크눌프는 헤세에게 마치 고향과도 같은 편안함을 안겨주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크눌프 - 헤르만 헤세 지음(민음사)

 

크눌프의 줄거리

앞서 말한 것 처럼 소설 크눌프는 주인공 크눌프에 관한 세편의 이야기(초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종말)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초봄. 크눌프는 2월 중순경 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그러나 몹시 고약한 날씨 탓에 겨우 며칠을 돌아다녔을 뿐인데도 열이올라 잠시 머물 곳을 찾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지역 어느 도시에서든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친구가 많은 크눌프는 레히슈테텐에 살고 있는 무두장이 에밀 로트푸스를 찾아가고, 로트푸스 역시 자신을 찾아온 친구를 따뜻하게 맞이해 줍니다. 무두장이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게 된 크눌프는 어느날 창문을 통해서 이웃집의 어린 하녀 바바라를 보게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소녀를 위해 휘파람을 불어 줍니다. 한편 무뚝뚝한 자신의 남편과 달리 예의바르고 상냥한 크눌프에게 반해버린 로트푸스의 부인은 크눌프를 유혹하며 외출을 하는 그에게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깁니다. 크눌프는 지난 밤의 어린 하녀 바바라와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며 그녀를 기쁘게 만들고, 짧지만 아쉬운 만남을 뒤로 한 채 작별합니다. 무두장이의 집으로 돌아온 크눌프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로트푸스 부인 몰래 조용히 이층의 방으로 올라가고, 다음날 떠날 것을 결심한 채 잠이 듭니다.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이름을 알 수 없는 크눌프의 친구인 화자가 크눌프가 죽고난 후 그를 회상하는 설정입니다. 청년시절 크눌프와 함께 산으로 들판으로 여행을 다녔던 것에 대한 회상이며, 크눌프와 화자가 나누었던 대화들이 주된 줄거리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몫을 철저히 혼자서 지고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는 없는 거야'

 

'아버지는 그의 자식에게 코와 두 눈과 심지어는 이성까지도 물려줄 수 있지만 영혼은 아니야. 영혼은 모든 사람들 속에 새롭게 존재하는 것이지'

 

크눌프의 말들 속에서 자유로우면서도 고독한 방랑자의 삶이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자신과 가까운사람이라도 결코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거나, 동화될 수 없다는 즉, 개개인 존재로서의 유일무이함과 또 그에 따르는 근원적인 고독한 삶을 이야기 합니다. 축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크눌프는 친구의 곁을 떠납니다. 모든 사람이 고독한 존재라는 크눌프의 의견에 반박하던 화자는 크눌프를 떠나보네고부터 줄곧 고독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종말. 40대가 된 크눌프는 불라하로 가는 시골길 위에서 동창생 마홀트가 모는 마차와 마주하게 됩니다. 십 수년만에 만난 의사 마홀트는 크눌프의 병색을 알아보고 크눌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갑니다. 보살핌을 받아 조금의 기력을 회복한 크눌프에게 마홀트는 5학년때 까지 자신과 같이 다니던 라틴어 학교를 떠난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게되고, 크눌프는 자신의 방랑생활이 시작된 계기이자 흠모하던 여인 프란치스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편 마홀트는 크눌프를 위해 오버슈테텐에 있는 병원을 알아봐주려 하지만, 크눌프는 극구 만류하고, 굳이 병원으로 가야한다면 고향인 게르버자우로 가기를 원합니다. 마홀트의 도움으로 고향에 도착하게된 크눌프, 그러나 크눌프는 병원으로 가지 않고 고향 구석구석 젊은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곳들을 헤메고 다니며 최후를 맞이 할 준비를 합니다. 첫 눈이 내리던 날, 환각적으로 나눈 신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방랑적인 삶에 대한 회의를 늘어놓지만, 그러나 크눌프는 결국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만족감을 느끼며 눈밭에서 잠이 듭니다....

 


자유로운 방랑자 크눌프

크눌프는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따듯함이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독일 시골 마을의 전원 풍경,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부드럽고 유려한 문체가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가 저는 참 좋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친구 부인의 유혹을 슬기롭게 뿌리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소녀를 위해 휘파람을 불어주는 크눌프, 여러가지 재주로 사람들을 기쁘게 만드는 크눌프의 모습에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방랑자 크눌프를 기쁘게 맞이해주는 친구들과 사람들의 모습도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그것은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씨요, 한국 사람들의 정서인줄로만 알았던 그야말로 정(情)이었습니다.

 

마치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고, 사는동안 아픔도 슬프도 겪지 않고 좋은일만 가득했을 것 처럼 보이는 크눌프가 사실은 연인에게 배반당한 아픈 경험과, 남의 집에 입양된 아들을 담너머에서 지켜봐야하는 슬픔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크눌프가 지닌 따뜻한 마음씨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아픈 경험과 슬픈 사연을 기반으로 한 것이에 더욱 빛납니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가슴속에는 슬픈 사연을 지닌 크눌프는 술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주정뱅이가 되거나 혹은 몹쓸 짓을 일삼는 불량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크눌프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자유로운 방랑자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크눌프의 삶 또한 멋지지 아니한가

소설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죽음을 앞둔 크눌프가 환각적으로 신과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었습니다. 크눌프는 자신의 삶이 과연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 의문을 품게되고 회의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주한 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만족감을 느끼며 눈을 감습니다. 폐결핵에 걸려 눈밭에서 죽음을 맞이한 크눌프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사실 만으로는 몹시 쓸쓸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종말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 처럼 느껴졌습니다. 크눌프는 눈밭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마치 매우 따뜻하고 포근한 곳에서 편안하게 잠이든 것 같았습니다.

 

자유로운 방랑자 크눌프의 삶은 전혀 실용적이지 못하고 때로는 무가치해 보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의 시선으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의 말 처럼, 크눌프와 같은 삶은 유용하지는 않지만 해롭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기쁘게 했던 크눌프의 삶은 메마른 땅에 단비와도 같은 삶, 나른한 오후에 달콤한 낮잠과도 같은 삶이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크눌프를 통해서 우리 모두의 삶이 제각기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배척이나 비난이 아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줄 것을 권유하는 것 같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자유로운 크눌프의 삶이 최고라고 말하지도, 무두장이 에밀 로트푸스의 삶이 혹은 의사 마홀트의 삶이 최고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무두장이의 삶은 무두장이의 삶대로, 의사의 삶은 의사의 삶대로 그리고 크눌프의 삶은 크눌프의 삶대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짐을 고독하게 지고 걸어가고 있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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