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를 읽고




살아가다보니 머리가 복잡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날이 있습니다. 마음을 달래려 주위를 돌아봅니다. 이것들 저것들 없는 것 없이 물건들로 들어 찬 방, 여기저기 저를 부르는 사람들. 그러나 풍요로움에 파묻혀서도 그리고 사람들로 둘러쌓임에도, 저에게 찾아온 정신적 빈곤과 마음의 가난함을 메워주지는 못함을 느끼게 됩니다.


필요 이상으로 우겨 넣었던 음식들은 배 속에 거북한 기분만 남길 뿐 이었습니다. 이것만 손에 넣으면 행복에 이를 줄 알았던 물건들은 되려 저로하여금 긁힐까, 부서질까 노심초사하는 가시방석위에 앉게 만듭니다. 사람들 속에 둘러 쌓이면 행복할 줄 알았건만, 복잡한 인간관계 때문에 머리가 아파오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읽고, 저의 삶을 돌아보니 참으로 부끄러워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친 마음이 평온해 지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고귀하다.


법정 스님

법정 스님은 1932년 10월 8일 한반도의 서남단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의 유달산 자락에서 꿈 많은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자랐습니다. 한 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서 고민하던 청년 법정은 1955년 마침내 입산 출가를 결심하고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날 집을 나섰습니다.


"삭발하고 먹물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그길로 밖에 나가 종로통을 한바퀴 돌았다"


출가 본사 송광사로 내려온 법정 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임암을 떠나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에서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전기와 수도조차 없는 오지, 겨울이면 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을 구해야하는 척박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했습니다.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대표적인 저서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무소유는 책의 제목 혹은 법정 스님의 사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평생에 걸쳐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삶 그 자체였던 것 입니다.


2010년 3월 11일은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 날이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신 날 이었습니다. 그것은 비단 한 종교계 만의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어떤 부자나 유명인사의 죽음보다도,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가난한 삶을 살았던 한 노 스님의 죽음 앞에서 더욱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산에는 꽃이 피네 - 법정 스님 (류시화 엮음, 문학의숲)


'무소유'가 법정 스님의 초기 사상을 대표하는 저서라면 이 책 '산에는 꽃이 피네'는 그 이후, 특히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들어가 홀로 생활한 다음부터의 사상을 투명하게 담은 대표 명상집입니다. 이 책은 법정 스님께서 직접 쓰신 저서는 아니지만, 법정 스님이 법문과 강연 그리고 말씀하신 내용들을 류시화 시인이 추려내어 엮은 것 입니다. 각장의 서두에서는 엮은이 류시화의 글들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엮은이가 법정 스님에게서 느낀점이나 스님과 있었던 일화를 담은 이 짧은 글들은 마치 식전의 에피타이저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에피타이저가 식전에 입맛을 돋우듯 산뜻하게 책의 문을 여는 것 이었습니다.



산에는 꽃이 피네

법정 스님의 말씀들은 살아생전에 스님이 주관하던 모임의 이름처럼 참 맑고 향기로웠습니다. 책 속에는 단순하고 간결한 삶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구절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풍요로운 감옥속에 갇혀 살고 있는, 그러나 정신과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머리를 죽비로 내리치는 듯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주어진 가난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 즉 청빈은 절제된 아름다움이며 삶의 미덕이다. 풍요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잇는 사람 앞에 섰을 때 나는 기가 죽지 않는다. 내가 기가 죽을 때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가난함을 느낄 때는, 나보다 훨씬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함과 간소함 속에서 여전히 삶의 기쁨과 순수함을 잃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이다.'


겉 껍데기의 호사스러움이 아니라 안으로 부터의 충만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당장 눈앞의 이익, 눈에 보이는 겉모습 그러니까 나무한그루를 보는데 매달리는 것이 아닌 숲을 보는, 보다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에 다가가게 만드는 혜안이었습니다.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 물질이나 정신이나, 밖으로나 안으로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또 온갖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심지어 우리가 믿는 종교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 어느 것 하나에라도 얽매이면 자주적인 인간 구실을 할 수 없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 이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 순간순간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매 순간을 자기 영혼을 가꾸는 일에, 자기 영혼을 맑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한다.' 


법정 스님의 말씀은 어느 특정 종교를 넘어서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에 조차 얽매이지 않고 자기 속에 중심을 두고 사는 삶, 그것이 가장 나다운 삶의 모습이자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의 모습인 것 입니다.


독후감을 작성하다보니 제가 쓴 글은 별로 없고 죄다 책에 있던 좋은 구절들을 옮겨적어 놓기만 한 것 같아서 새삼 부끄러워 집니다. 그러나 이번 독후감은 부족한 저의 글 솜씨로 구구절절 적어내려가기 보다는 이렇게 법정 스님의 좋은 말씀들을 옮겨 적어 놓는 편이 훨씬 더 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정 스님은 산골짜기에 홀로 기거하시며 중생들의 구제 혹은 사회적인 문제의 해결에는 다소 소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평생동안 실천하신 청빈하면서도 따뜻한 삶의 모습 그 자체로도 사람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그 어떤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 보다도,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살았던 가난한 노 스님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게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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