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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by 코믹디언 201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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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세계 문학 혹은 이름난 명작들을 찾아 읽는 이유는 이를테면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죽은 삶과, 읽어보지 못하고 죽은 삶이 있다면 저는 당연히 읽고 죽은 삶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더 단순하게 말하면 재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 한 것이니 저 역시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 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이번에 읽은 책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입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열광했던 것은 특히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은 작가인 샐린저에게 불멸의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었습니다. 1951년 발간되자마자 미국 전역의 젊은 층을 사로잡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른바 '샐린저 현상'은 그 인기를 대변해주는 것으로, 당시 대학생들은 누구나 호밀밭의 파수꾼을 들고 다녔으며, 자신들을 소설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동일시했습니다. 전 세계 대학생들을 삐딱이로 만들어버렸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작품의 엄청난 인기와는 상반되게도 샐린저의 생애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호밀밭의 파수꾼 이후로 몇 개의 작품을 더 내놓기는 했지만, 1965년 이후 완전히 사회와 결별하여 단 한번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더이상의 작품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샐린저는 2010년에 91세의 나이로 타계)

 

샐린저의 생애를 알고 난 후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작품을 돌아보니, 소설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에게서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자전적 소설이긴 하지만). 샐린저는 이 소설 속에 그의 진심을 담아낸 것 같았습니다. 마치 소설 속에서 주인공 홀든이 꿈꿔왔던 삶, 숲속에서 오두막을 짓고 벙어리 처럼 살아가는 삶을 그는 진짜로 실현해 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회라는 진흙탕에 실망해버린 한 순수한 영혼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민음사)

 

호밀밭의 파수꾼의 줄거리

소설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홀든이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을 하기 전,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있었던 일들을 형인 D.B에게 털어놓은 것 입니다. 결론적으로는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이지만 홀든의 기억을 따라서 마치 오늘 일어난 일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주인공이 펜시 고등학교를 떠나는 날 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실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난 것 이었습니다. 퇴학 말입니다. 이야기는 펜시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주인공이 뉴욕에 있는 집에 돌아가기 까지 2박3일 간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상황설정이 매우 파격적인데,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퇴학당한 것이 펜시 고등학교를 포함하여 무려 4번째 입니다. 펜싱부, 역사 선생님(스펜서) 그리고 기숙사 동기녀석들(스트라드레이터, 애클리 등), 그러니까 펜시 고등학교라는 곳에서 질릴대로 질려버린 홀든은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옵니다. 예정보다 일찍 학교에서 나와버린 탓에 집에들어가지 못하는 주인공의 뉴욕에서의 방황이 소설의 대부분입니다. 홀든은 나이트클럽을 전전하기도 하고, 나이에 맞지도 않는 술을 마셔대고, 매춘부를 부르고, 옛 애인 샐리 헤이즈를 만나는 등 이성을 갈구하기도 혹은 누군가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눌 사람을 끊임없이 갈구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시도나 만남도 홀든의 마음 속 그 어떤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못하는 것을 느낍니다. 문뜩 여동생 피비가 보고싶어진 주인공은 부모님 몰래 집으로 들어가 여동생을 만납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제목

소설을 읽어보기 전에는 호밀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제목으로 말미암아 시골을 배경으로 하거나, 동화적인 내용의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매우 세련되고 도시적인 소설이었습니다. 또한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저는 별다른 내용의 진전이나 사건은 없고 시덥지않은 이야기만 너무 늘어 놓는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은 후 돌아보니, 사실 그런 이야기들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었을뿐더러, 홀든의 방황을 통해서 -사실 주인공 흘든의 방황은 도시 혹은 사회에서는 흔하게 볼수 있는 모습 그리고 만남들인데- 그것을 통해서 도시 혹은 사회의 위선과 허영, 물질만능 주의, 수박 겉핥기와 같은 얕고 약은 인간관계 같은 것들을 더할나위 없이 잘 드러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호밀밭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는 것은, 제 기억이 맞다면 단 두번 뿐입니다. 한번은 도시의 방황에서 질려버리고 우울해진 홀든이 앞에 있던 꼬마아이가 '호밀밭에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이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은 주인공이 부모님몰래 들어간 집에서 여동생과 대화를 나누는 부분입니다. 여동생 피비가 앞으로 되고싶은 것이 무었이냐고 물어오자 홀든은 아래와 같이 대답합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 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내내 쓸쓸하고 어두웠던 소설이 찬란하게 빛나고 벅차오르던 순간 이었습니다. 적어도 소설을 읽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소위말해서 대단하다고 평가받는 일 혹은 직업(의사나 판사, 검사 따위)보다도 홀든이 얘기한 호밀밭의 파수꾼이 하는 일이 더욱 멋져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자신도 때묻지 않은 아이처럼 되고싶다고 하기 보다는, 순수한 아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기를 자처하는 모습이라서 더욱 멋진 것 같습니다.

 

결코 홀든의 방황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삐딱하기 그지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퇴학당한 학교인 펜시 고등학교에대한 조롱과 비웃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주인공은 소설 내내 시종일관 삐딱한 모습입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역겹다라거나 토할 것 같다, 우울하다는 등의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역시 주인공의 성향이 잘 드러 납니다. 이러한 홀든의 모습은 보편적인 사회의 잣대로는 문제아 혹은 사회 부적응자로 보여지기 십상입니다. 아니 사실 어떠한 말로도 고등학교에서 4번이나 퇴학당한 홀든을 감싸주기가 더욱 힘들어 보입니다.

 

소설의 주된 내용인 16살 주인공의 도시에서의 방황은, 사실 주인공 내면의 방황이기도 합니다. 때묻지 않은 아이처럼 굴었다가는 도태되어버리고, 그렇다고 성인들의 세계에도 발을들여 놓을 수 없는 사춘기 소년의 방황을 샐린저는 절묘하게 그려내었던 것 입니다.

 

홀든은 센트럴파크의 호수가 얼어버리면 거기에 살던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합니다. 그야말로 아이와 같은 순수한 호기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를 궁금해하는 주인공을 이상하게만 바라 볼 뿐 입니다.

 

주인공이 초라한 행색에 모금함을 들고 다니는 수녀들과의 만남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대목에서는, 선하고 깨끗한 사람에 대한 주인공의 동경과, 그리고 역시 홀든의 마음속에 내재된 선한 마음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주인공은 성인들의 세계 혹은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합니다. 매춘부를 불러 놓고도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체, 오히려 돈을 더 뜯기는 주인공의 모습은, 결국 위선적인 사회에 완전하게 녹아들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소설은 블랙유머로 넘쳐납니다. 마치 소설 전체가,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것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순수하고 선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도태되어버리는 위선적인 사회에 대한 조롱인 것 같습니다.

 

어둡고 칙칙한 소설 속에서 주인공 홀든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았던 것은 여동생 '피비'였습니다. 이처럼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역시 위선이 넘쳐나고 때묻은 사회 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빛을따라 몰려들었고, 소설은 아직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마치 등불을 향해 모여드는 나방 처럼...

 

결국 홀든의 방황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던 것 입니다. 오히려 우리들, 특히나 자라나는 청소년 들에게는 직업이나 직장에 대한 고민보다도, 인간성 상실에 대한 회의와 순수함에 대한 갈망이 진하게 느껴지는 소설의 주인공 홀든과 같은 방황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이건 정말이다. 농담이아니다(소설속 홀든의 말투를 따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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