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 에세이 '그냥 :)'을 읽고

 

 

 

저는 에세이를 참 좋아합니다. 수필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마치 봄비와 닮았습니다. 세차게 몰아치지 않더라도, 보슬보슬 사뿐하게 내리면서도 어느새 겨우내 말라있던 땅을 촉촉하게 젹셔줍니다. 에세이 또한 그렇습니다. 자극적이거나 파격적이지 않더라도 혹은 치밀하게 짜여진 스토리가 없더라도, 일상에서 건져올린 날것에 가까운 이 이야기들은 우리의 감수성을 촉촉하게 젹셔줍니다.

 

저는 박칼린의 에세이집 '그냥 :)'을 읽었습니다. 박칼린, 그녀를 처음 보게 된 것은 역시 티비를 통해서였지만 그 느낌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모습과 카리스마, 이국적인 외모와 그보다 더 놀라운 사투리 등 호기심을 자아내는 그녀의 매력에 저 역시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끌리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팬심으로. 아무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장르의 글이 만났으니 저는 박칼린 그녀의 에세이를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음악감독 1호 박칼린

 

부산아가씨 박칼린

1950년대 유학생이라고는 극히 드물었던 시절, 부산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간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칼린의 아버지였습니다. 미국 유학중에 박칼린의 아버지는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여성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녀는 또한 칼린의 어머니였습니다. 박칼린의 이국적인 외모는 바로 이런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운명적인 사랑으로 비롯된 것 이었습니다. 

 

세자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박칼린은 태어나서부터 9살 때 까지 줄곧 부산에서 자랐으니 어였한 부산아가씨 입니다. 9살때 미국으로 가게되었고, 고등학교때 다시 부산으로와 경남여고를 2년 동안 다녔습니다. 대학은 다시 미국으로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하였으며, 졸업 후 다시 귀국하여 돌연 서울대학교 국악과 대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이때 무형문화제로 지정되신 판소리 명창 박동진에게 선택되어 사사했다는 일화는 꽤나 유명합니다. 아무튼 그녀는 이름 만큼이나 글로벌한 유년생활을 보낸 것 같습니다.

 

한국과 미국을 이웃동네 다니듯 넘나들며 박칼린은, 어느 한 점으로 좁혀지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관심과 소질이 이끄는 분야인 음악 혹은 예술에 대한 끈을 놓지않고 다양한 접근과 연마를 하였습니다. 마치 경기 일정이 잡히기 만을 기다리는 잘 손질된 스포츠카와 같이, 혹은 먹잇감을 기다리는 배고픈 매와 같이 아마도 그녀는 전력투구 할 만한 무대 혹은 목표물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마침내 찾은 그녀의 무대는 바로 뮤지컬이었고, 뮤지컬 '명성황후'로 그녀는 대한민국 음악감독 1호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냥 :) - 박칼린 지음(달)

 

공연은 계속되어야한다!

박칼린을 티비를 통해서 처음보게 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예능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을 통해서였습니다. 남자의 자격에서 그녀는 그야말로 호랑이 선생님 혹은 마녀에 가까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서도 음을 틀린 사람을 콕 집어내는 것도 놀라웠거니와, 그럴 때마다 따끔한 불호령도 함께 따라나왔습니다.

 

그녀의 에세이집 '그냥' 에서도 공연과 뮤지컬에대한 일화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음악감독 1호에 빛나는 실력에대한 과시가 아니라서 더욱 좋았습니다. 그야말로 공연 혹은 뮤지컬에대한 열정과 소신이었습니다.

 

내일 공연이 있는 자라면 어떤 이류로도 오늘 죽어서는 안 된다. 쓰러지기만 하고 반드시 공연 시작하기 전까진 다시 살아나야한다.....가혹하게 들릴 수도 있겟지만 목숨처럼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 이게 우리들의 거대한 전통이었다.

 

공연에 늦지 않기 위해서 도로 한복판에 차를 버려두고 온 이야기, 친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부산으로 내려가 밤을 꼴딱새고 다음날 서울에서 공연을 한 이야기 등을 듣고있노라면 평소 마냥 멋져보이고 재미있어보이는 무대에 서는 삶이 사실은 얼마나 막중한 책임감을 필요로하는 업인가 하는 것 을 새삶 느꼈습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말그대로 공연은 계속되어야하고, 관객들은 절대 몰라야 하는 것 입니다. 


 

즉흥여행을 좋아하고, 유리병을 수집하는 여자

공연이나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박칼린을 보여주었다면, 여행이나 그녀의 취미, 일상에 관한 이야기들에서는 박칼린이라는 한 여자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나 뮤지컬에 관한 이야기 만큼이나 이 책에서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그녀는 일 할 때의 철두철미한 모습과는 달리, 즉흥적이고 계획없이 떠나는 여행을 즐겼습니다. 그녀는 이런 여행에 '구름투어'라는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여놓았는데,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합니다. 예쁘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해서 유리병 수집하는 취미를 이야기 할 때에는 의외의(?) 소녀감성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나무로된 가면을 수집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박칼린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있습니다. 늘 그녀와 함께하는 가까운 지인에서 부터 작가 이문열, 영화감독 송일곤, 배우 조승우 등 대중들도 잘 아는 유명인들까지 폭넓은 그녀의 인맥이 놀랍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한사람 한사람의 인연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녀 안의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손을 내밀어주고 이끌어주었던 칼린의 스승들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판소리 명창 박동진 선생님과의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 였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스승들이 그녀를 알아봐 주었듯이, 이제는 그녀가 진흙속의 진주를 발굴해내는 일을 하고있는 것 입니다.

 

비록 박칼린, 그녀는 저를 알지 못하더라도  저는 이책을 읽고 저는 그녀와 훨씬 더 친근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미가 물씬 풍겨나는 글, 본래 수필이란 것이 그러한가 봅니다. 박칼린, 그녀의 에세이 혹은 글이 비록 문학적으로 대단한 평가를 받지 못할지도 모르겟으나, 저는 분명 그녀의 삶 속의 이런저런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혀졌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삶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살아나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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