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책이 가지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즉, 배움이라고 표현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소설이라는 인간의 머리 속에서 나온 허구의 이야기는 정보나 지식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크게 내세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소설은 역시 재미나 흥미 등 인간의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에 강합니다. 그러나 앞선 설명에는 큰 오류가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때때로 사람들은 그 어떤 고고한 지식이나 정보를 담은 텍스트 보다도 인간의 머리 속에서 나온 허구의 이야기에서 더 크고 많은 것 을 배운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소설을 통하여 더 크고 많은 것을 배운다'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넬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라는 소설입니다.

 

넬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앵무새 죽이기는 작가 하퍼 리의 유일무이한 작품입니다. 평생 단 한 작품만을 발표하고 은둔해버린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단 한편의 작품으로 대중적 성공과 문학적 성취를 동시에 이루어 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녀는 다음 작품을 쓸 여력조차 남기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앵무새 죽이기라는 소설을 써내려 갔나 봅니다.

 

재미있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최근에 이제는 88세의 할머니가 된 그녀가 55년만에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 작품을 발표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앵무새 죽이기 보다 먼저 쓰여 졌으나, 잃어버린 줄 알았던 원고를 최근에야 찾았다고 합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 작품이라고 하니 다분히 기대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노파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 '친구'의 후속작이 개봉할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88세의 할머니가 된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의 줄거리

하퍼 리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말 한 적이 없지만, 이야기는 그녀의 성장 과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녀의 고향인 앨라배마주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변호사인 아버지, 그리고 앨라배마주에서 일어난 소설 속 이야기와 비슷한 인종차별 문제 등이 그렇습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경제대공황 직후이며, 무대가 되는 곳은 미국의 남부 앨라배마주의 가상의 도시인 메이콤이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소설은 스카웃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진 루이즈 핀치라는 소녀의 성장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오빠 젬 핀치, 여름 방학이면 메이콤군에서 머무르는 친구 딜, 주인공의 아버지이자 메이콤군의 변호사인 애티커스 등이 주요 등장인물 입니다. 소설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시대적으로도 그리고 공간적으로도 편협하고 보수적인 메이콤군의 분위기와, 등장인물 혹은 이웃들의 행동방식과 성향을 그려내는데 주력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그 속에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세밀하고 흥미진진하게 잘 버무려 내고 있습니다. 젬 오빠와 스카웃 그리고 딜, 셋이 어울려 다니는 모습을 사실적이고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는데, 이 아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마을에서 흉가처럼 치부되고 있는 이웃집과, 평생동안 그 집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부 래들리라는 아저씨 였습니다.

 

2부에서는 소설 속에서 가장 크고 핵심적인 일명 '톰 로빈슨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백인 여성 메이옐라 이웰을 강간한 혐의를 지니고 있는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의 변호를 스카웃의 아버지인 애티커스 변호사가 맡게 됩니다. 애티커스는 백인 여성을 강간한 흑인을 변호한다는 사실 만으로 마을사람들에게 질타와 위협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스카웃과 젬 핀치까지도 또래 아이들 혹은 이웃 사람들에게 놀림과 아버지를 모욕하는 말 등을 듣게 됩니다. 톰 로빈슨의 재판을 보러 가게 된 아이들은 치우침 없이 냉정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톰 로빈슨의 무고함을 밝혀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법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보기에도 아무런 죄가 없어 보이는 흑인 톰 로빈슨은 결국 유죄를 선고 받게 되고, 아이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한편 톰 로빈슨의 재판에서는 이겼을지 모르나, 애티커스의 냉철하고 예리한 변호에 모멸감을 느꼈던 메이옐라의 아버지 밥 이웰은 앙갑음을 다짐하게 됩니다....  

 

앵무새 죽이기 - 넬 하퍼 리 지음(문예출판사)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

이 소설이 단순히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좁은 시각입니다. 인상적이고 다분히 상징적인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소설 속에 등장합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 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앵무새는 위의 설명처럼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무고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부 래들리나 톰 로빈슨 역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공기총도 칼도 아닌 실체를 알 수 조차 없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단어로 표현하자면 편견이나 선입견, 색안경과 같은 것 들일 것입니다.


 

훌륭한 아버지 애티커스 변호사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은 단연 주인공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 변호사입니다. 애티커스 변호사는 흑인 청년 톰 로빈슨을 변호하며 부당함에 맞서 싸웁니다. 마치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를 보는 듯합니다. 패배 할 것이 확실하면서도 그리고 위험에 처할 것을 감수하면서도 애티커스가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마음 속에 느껴지는 작은 불쾌한 기분을 외면해 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이건 아니잖아'라는 외침 같은 것이겟죠. 양심을 지켜나가는 애티커스의 모습을 통해서 아이들은 결국 아버지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인공 스카웃과 젬 오빠를 한층더 성장시키는 귀한 자양분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켜나가는 애티커스 변호사의 모습은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 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소설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아기의 걸음마와도 같은 것 입니다. 미약하지만 위대한 한 걸음인 것 입니다.

 

의미가 있는 스카웃의 성장

묵직한 주제 의식이나 교훈 같은 것들을 제쳐 놓고, 단지 소녀 그리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읽는 것 만으로도 소설은 참 흐뭇합니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순수한 아이들의 눈을 통해서 부조리함이나 모순을 드러낸다거나 극대화 시키기 보다는, 순수한 아이들 마저도 편견이나 선입견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설 속 아이들은 마을에서 소문이 무성한 부 래들리 혹은 그의 집을 마치 유령의 집 처럼 무서워 하면서도 탐험의 대상처럼 흥미진진해 합니다.

 

그러나 더욱 의미있는 것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한 주인공 스카웃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괴물 혹은 유령 처럼 생각했던 부 래들리 아저씨가 사실은 다정하고 수줍음이 많은 신사였고, 백인 여성을 강간한 혐의를 지니던 톰 로빈슨은 사실 선량하고 배려심이 깊은 청년이었습니다. 소설은 순수한 아이들 조차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주인공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

 

스카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가 전에 말했던 이야기를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카웃의 성장이 의미가 있는 이유입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