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저는 책을 읽고 난 후 이렇게 블로그에 독후감을 작성하면서 읽은 책에 대한 줄거리 그리고 책을 읽고 느낀점 등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최근에는 오랜만에 고전명작을 읽었는데,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라는 책입니다. 또한 훌륭하단 말로는 설명이 한참 부족한 이 소설 덕분에 포스팅을 하는데에도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지음(민음사)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읽기 전에도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특히 최근에 읽은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서 나온 '이방인'에 대한 설명이 참 좋아서 저로하여금 이 책을 사게끔 그리고 읽어보게끔 만들었습니다.

 

알베르 카뮈

1913년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카뮈는 태어납니다. 카뮈의 생애동안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 였기 때문에 카뮈는 프랑스 문학계에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1960년 알베르 카뮈는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그가 생애동안 어느정도의 작품들을 남겼다는 것이 다만 조금의 위안거리가 될 수 있겠으나, 그가 47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과 이별하게 된 것은 인류 문학사에 있어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방인은 알베르 카뮈의 처녀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이방인 이전에도 많은 글을 썼습니다. 알제리 출신의 젊은 무명작가였던 그는 1942년 이방인을 발표 하면서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받게됩니다.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15년이나 뒤의 이야기지만, 카뮈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애를 안겨준 계기가 된 작품은 분명 이방인입니다.

 

알베르 카뮈 -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최연소 44세)

 

이방인의 줄거리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일상적인 나날들을 보네던 중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재판을 통하여 사형을 선고받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소설 전반에는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냥 읽어보아도 무방하지만, 작품에 나타나는 세가지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어두고 읽어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소설에서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는 죽음인데,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의 뫼르소의 모습은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서 가장 잘 드러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그에게는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실존적이고 즉흥적이며, 거짓을 거부하는 인물입니다. 거짓을 거부 한다는 의미는 진실만을 말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다는 표현이 더욱 적합합니다. 마냥 슬프기만 할 것 같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그는 졸리고 피곤하고 지루하다는 현실적인 감정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나와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기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슬픔으로 산책하기 좋은 날씨를 과장하거나 외곡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들은 자칫 잘못하면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라고 비춰지기 십상입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는 배고픈 감정도 없어야하고 반드시 눈물이 흘러야하며, 산책하기 좋은 날씨도 우울한 날씨여야만 하는 보통의 사회 속에서 뫼르소는 분명 이방인입니다.


 

뫼르소의 살인

뫼르소는 어떤 계기로 이웃집의 레몽이라는 남자와 어울리게되고, 그와 어울려 바닷가로 놀러갔다가 우발적으로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이게 됩니다. 아랍인의 죽음은 소설에 등장하는 두번 째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소설이 1부에서 2부로 넘아가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자유인이었던 뫼르소가 현실적인 제도 속에 자유를 구속 당하는 계기가 됩니다.

 

뫼르소가 아랍인에게 총을 쏜 이유는 태양 때문이었습니다. 태양 때문에 사람에게 총을 쐈다는 것은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 이유이지만, 즉흥적인 뫼르소라는 인물에 비추어보았을 때 그의 즉흥적인 감성이 현실적인 상황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꼭 '죽여야겠다'라는 감정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과 아랍인이 들고있던 칼에 반사된 태양 빛의 눈부심이, 뫼르소의 솔직한 감성으로 하여금 순간 방아쇠를 당기게 만들었다는 설명이 적합 할 것 같습니다. 네발의 총성은 그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번의 노크 소리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뫼르소

소설의 2부는 뫼르소가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뫼르소의 사형은 소설에 등장하는 세번 째 죽음인데, 뫼르소가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소설이 끝나기 때문에 실제로 소설에는 존재하지 않는 죽음입니다. 재판을 받는 과정은 소설 속에서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에서도 뫼르소의 즉흥적이고 감정에 충실한 모습은 여실히 그려집니다.

 

모든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순조롭고 소박하게 진행되어, 나는 가족들 사이에 끼여 있는 것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인상을 받는 것이었다.

 

재판을 받는 것에 익숙해진 뫼르소가 느낀 감정을 표현한 위의 문장에서, 자신에게 좋지않은 상황에서 조차 편안함을 느껴버리는 인간의 적응과 익숙해짐에 대한 카뮈의 통찰력에 감탄하였습니다.

 

재판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무심했던 뫼르소의 이야기를 다시 불러 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뫼르소를 냉철한 살인자로 만들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조건들입니다. 오히려 뫼르소는 냉철한 살인자에 더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 마저도 뫼르소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모습을 냉철한 살인자의 모습과 직결 시켜버리는, 재판의 부조리한 모습 속에서 놀랍게도 살인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앞에두고도 뫼르소를 응원하는 소설을 읽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항변해서 무죄를 주장하거나 사회 관념의 모순을 타개하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신념과 솔직한 감정을 굽히지 않는 뫼르소에 대한 지지와 연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뫼르소는 사형을 선고 받습니다. 그의 영혼의 구제를 위해서라도 기도하겟다는 신부에게 뫼르소가 기도하지 말라며 소리치는 장면을 보여주며 이 소설은 정점에 다다릅니다.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작품내내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소극적이고 밖으로 표출하지 않던 뫼르소가 작품중 거의 유일하게 적극적이고 확실하게 밖으로 표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죽음을 앞에두고 비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이나 구원 따위를 떨쳐버리고 실존하는 자기 자신만을 확신하는 이 장면은 작품속에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분명 이방인입니다. 즉흥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에 충실하며 살기에는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설령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는 상황이더라도 배가 고프거나, 졸리거나 때로는 눈물이 나지 않는 인간적인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아닌척 그런척하며 살아 갈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눈물이 나지않는 것과 슬프지 않다는 것이 반드시 동일한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신념과 솔직한 감정을 굽히지 않는 뫼르소는 존경스럽거나, 훌륭한 인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소설을 읽으며 자신도 모르게 살인자인 주인공을 지지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가장 인간 다운 본질을 추구하는 자에 대한 응원 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제가 읽은 책은 민음사에서 출판된 '이방인'이며, 김화영이라는 분이 번역을 하셨습니다. 매우 저명하신 분이라 번역 역시 훌륭하였고, 책의 뒷편에 있는 상당한 분량의 작품해설도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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